시멘트-레미콘-건설사, 한해 공급가격 미리 협상
원가 35% 차지하는 유연탄값 변동, 제때 반영 안돼
쌍용양회 동양시멘트 등 업계 1, 2위 업체가 시장에 매물로 나오고 현대시멘트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진행하는 등 업계 전반이 구조조정에 휩싸여 있지만,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생산원가가 떨어지면서 시멘트 제조업체들이 상당한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멘트를 사다 쓰는 레미콘 업계나 건설회사, 소비자들은 그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시멘트 가격이 지난해보다 1400원 오른 t당 7만5000원으로 지난 7월 결정됐기 때문이다. 시멘트 가격은 시멘트와 레미콘, 건설업체 담당자가 만나 향후 1년간 공급할 가격을 협상하는 방식으로 정해진다. 이 같은 관행 때문에 시멘트 가격의 변동 요인이 제때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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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2011년 t당 133달러였던 국제 유연탄 평균 가격은 2012년 105달러, 지난해엔 93달러로 떨어졌다. 지난달 말에는 68달러까지 내려왔다.
생산원가의 35%가량을 차지하는 유연탄 가격 하락으로 시멘트 제조사들의 수익성도 급격히 좋아졌다. 쌍용양회는 지난 상반기 영업이익이 1년 전에 비해 150.9% 늘어난 476억원을 기록했다. 성신양회도 42.5% 증가한 18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해 상반기에 냈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경영 실적이 개선된 것은 구조조정과 원가절감 노력 덕분”이라며 “누적 적자는 여전히 심하다”고 주장했다. 수익성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판매가격을 떨어뜨릴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반면 건설사와 레미콘 업계는 “시멘트 업체들의 적자는 과거에 진 부채로 생긴 이자비용이 대부분”이라고 반박한다. 생산원가가 많이 낮아졌기 때문에 시멘트 판매가격도 낮춰야 한다는 논리다.
○가격 결정 관행 문제없나
시멘트는 쌍용양회 한일시멘트 성신양회 동양시멘트 라파즈한라 현대시멘트 아세아시멘트 등 7개 회사가 생산한다. 하지만 시멘트 업계는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자율적인 경쟁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7개 회사의 제품이 같은 데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시멘트의 85%가량을 소비하는 레미콘 업체와 협상해 가격을 올리기 때문이다.
시멘트 가격이 오르면 유진기업 삼표산업 아주산업 등 주요 레미콘 업체들도 레미콘 가격을 올려야 한다. 레미콘 업계는 작년보다 2200원 오른 ㎥당 6만2100원으로 레미콘 가격을 결정했다. 레미콘 ㎥당 시멘트는 300㎏이 들어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4월 7개 시멘트 제조사를 대상으로 가격담합 여부를 조사했고, 그해 업체들은 가격 인상을 철회했다.
그동안 시멘트 업체들 간 가격 인하 경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회사 라파즈가 한라그룹 부도로 매물로 나온 한라시멘트를 인수, 라파즈한라로 사명을 바꾼 뒤 공격적으로 가격 인하에 나섰다. 라파즈한라의 시장점유율은 2004년 9.9%에서 2006년 13.9%로 높아졌다. 쌍용양회 성신양회 등 다른 회사들은 경쟁적으로 맞대응에 나섰고 2003년 6만7000원이던 시멘트 가격은 2006년 4만8000원으로 폭락했다.
이 같은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으로 시멘트 회사들의 매출과 순이익이 급격히 떨어지자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업계 내부의 가격 인하 경쟁도 수그러들었다. 대신 레미콘 업계를 대상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쪽으로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2009년 시멘트 업계는 ‘공급 거부’라는 강수를 두면서까지 t당 8500원을 인상하는 방안을 밀어붙였고 레미콘 업계와 갈등을 빚었다.
■ 시멘트는…
석회석과 제철 부산물 등을 유연탄으로 구워 만드는 시멘트는 1960년대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되면서 ‘경제개발 전략사업’으로 지정됐다. 1964년 한 해에만 쌍용양회 한일시멘트 현대시멘트 등 세 곳의 시멘트 회사가 생겼다. 대부분 시멘트 회사의 업력이 비슷하다보니 시멘트 업체들의 생산 방식이나 품질이 비슷하다. 시멘트 공장도 석회석이 많이 나는 강원과 충북에 몰려 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