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세뱃돈
설날 아침 일가친척들 모여 차례를 지내고 나면 은근히 신경 쓰이는 게 있다. 바로 세뱃돈이다. 적게 주자니 체면이 구겨지고 호기를 부리다간 지갑이 홀쭉해진다. 조만간 조카들 졸업식, 입학식 등 가욋돈 들어갈 곳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상황 돌아가는 걸 보며 부부간에 눈짓을 주고받다가 액수를 보태거나 빼기도 한다.

그렇다면 얼마를 준비하는 게 좋을까.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 중에 올해 근로자 최저임금 시급 4580원을 기준으로 책정하라는 ‘조언’이 그럴 듯하다. 미취학 아동은 5000원, 초등학생은 1만원, 중학생은 2만원, 고등학생은 3만원,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은 5만원 정도가 적당하단다. “형은 1만원인데 왜 나는 5000원밖에 안주느냐”고 칭얼대는 ‘꼬맹이’에겐 최저임금 시급보다 420원이나 많다면서 잘 달래라는 처방까지 나와 있다. 5촌을 넘어가면 이 액수의 50%만 주면 된다나.

[천자 칼럼] 세뱃돈
세뱃돈 주고받는 풍습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니다. 중국에선 ‘훙파오(紅包)’라는 붉은 색 봉투에 새 돈을 넣어 덕담과 함께 건넨다. 이를 압세전(壓歲錢)이라 부른다. 돈을 많이 벌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새해를 상징하는 연이나 매화가 그려진 봉투에 돈을 넣어 준다. 에도시대부터의 관행이다. 베트남 역시 빨간 봉투에 새 돈을 넣어주는 ‘리시’라는 풍습이 전해져 온다. 모두 한 해를 풍성하고 건강하게 지내라는 기원이 깃들어 있을 터다.

세뱃돈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현금 대신 예금이나 펀드를 개설해주는 ‘재테크형’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국제 경제감각을 길러준다는 뜻에서 미국 유럽 중국 호주 캐나다 등 주요국 외화(外貨)로 구성된 ‘세뱃돈 세트’(2만3000~5만5000원)를 준비하는 이들도 있다. 올해는 2009년 발행됐다가 17일 만에 폐기된 ‘짐바브웨 100조달러 지폐’와 지니고 있으면 용의 기운을 얻는다는 ‘황금 흑룡 지폐’가 한 온라인 오픈마켓에서 인기리에 팔리기도 했다.

물가는 자꾸 오르고 일자리 잡기는 어렵다. 시원찮은 벌이 탓에 선물꾸러미도 전보다 가벼워졌다. 그러나 쉽고 편안한 시절이 언제 있었던가. 고달프지만 견디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가족 친지들이 모여앉아 왁자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시름이 저만치 물러난다. 한 뼘씩 커버린 아이들이 세뱃돈 받아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적지않은 즐거움이다. 그렇게 다시 설을 맞는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