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허라미 기자·Gemini
그래픽=허라미 기자·Gemini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육십 평생 그림만 그린 게 아니다.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동력 장치부터 무기까지 모나리자 못지않게 발명 업적이 수두룩하다. 그래서였을까. 자는 시간이 아까웠던 이 천재는 독특한 수면법까지 발명했다. 4시간마다 20분씩 짧은 낮잠을 여러 번 반복하는, 이른바 ‘다상 수면법’이다. 하루 동안 취하는 총수면 시간은 5시간 남짓.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 사명의 모태가 된 세르비아 출신 미국 전기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 그와 경쟁한 토머스 에디슨 모두 이 극단적인 분할 수면법을 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잠’을 거부하는 이 방식은 오늘날 유명인의 삶 속에도 스며들어 있다.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대표적이다. 그는 마흔을 넘긴 나이에 현역 선수 생활을 유지하는 비결로 90분씩 다섯 번 나눠 자는 분할 수면법을 들기도 했다. ‘잠을 줄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온 한국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4당5락’(4시간 자면 입시에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 ‘미라클 모닝’(이른 새벽에 일어나 자기 계발에 시간을 쓰는 것) 따위에 열광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을 곧 ‘갓생’(God+生·부지런하고 완벽함을 지향하는 삶)의 시작으로 여겼다.

그런데 최근 수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슬립맥싱’(수면 극대화)이란 키워드가 미라클 모닝 대신 SNS를 뒤덮기 시작했다. 양질의 잠이 주는 휴식의 의미가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잘 자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슬립 투어리즘’이 인기를 끌고, 최적의 수면 루틴을 기술로 설계하는 ‘슬립테크’ 산업도 성장세다. 고급 매트리스부터 디바이스, 안대·마스크, 디퓨저, 패치, 나이트 전용 스킨케어까지 잘 자는 데 쓰이는 제품의 가짓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수면은 이제 글로벌 웰니스산업의 거대한 축으로 떠올랐다.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등이 애용한다는 미국의 스마트매트리스 제조업체 에이트슬립은 “숙면은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교한 설계를 통해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수많은 해답지를 쏟아내고 있는 인공지능(AI)이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수면까지 파고드는 시대다.

오감을 재우는 숙면은 '내려놓기'에서 시작된다
수면 위로 떠오른 '슬립맥싱'

꿀잠 꿈꾸는 사람들…'슬립맥싱'에 눈 뜨다
느릿한 장마와 함께 열대야가 시작됐다.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 잠을 청하기 쉽지 않은 날들이 이어진다. 새벽까지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다가 귀가 찢어질 듯한 알람 소리에 허둥지둥 정신을 차려 보면 아침이다. 물먹은 솜 같은 몸을 일으키며 시작하는 하루는 불쾌하기 그지없다.

135만 명의 한국인이 밤마다 ‘잠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작년 한 해 수면장애로 진료나 처방을 받은 환자 수다. 심각한 처방전을 받아들진 않았더라도 푹푹 찌는 더위와 함께 좀처럼 잠에 들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계절이 왔다. 성인 10명 중 9명(89%)꼴로 최근 한 달 새 수면 문제를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는 최근 조사(한국에자이) 결과를 보면 수면 장애를 질병으로 인식하고 병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성인 대부분이 대한수면학회 등에서 권장하는 6~8시간 수면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24년부터 틱톡 등 SNS를 뒤덮은 ‘슬립맥싱’은 깨끗한 피부와 건강한 몸을 위한 궁극의 웰니스는 곧 숙면이란 인식에서 시작됐다. 육체적 매력을 극대화하려는 ‘룩스맥싱’을 위한 전제 조건인 셈이다. 슬립맥싱을 실천하려면 루틴에 가까운 노력이 요구된다. 계절 변화에 맞춰 단순히 침구를 바꾸는 데 머물러선 수면의 질을 최고로 끌어올리기(maximize) 어렵다는 것이다. 최적의 수면 환경을 위해 빛을 차단하고, 잔잔한 백색 소음으로 청각을 부드럽게 달래는 작업이 우선 필요하다. 또 아로마 오일 향을 맡으며 깊은 호흡을 반복하고, 필요에 따라 수면 보조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무의식의 세계로 가는 길에 있는 모든 감각을 건드리는 일종의 의식에 가깝다. SNS상에선 코골이를 막기 위해 테이프로 입을 바짝 막는 마우스테이핑 같은 다소 극단적인 방식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달 말 서울 논현동 가구거리에 660㎡(약 200평) 규모로 들어선 마테라소 플래그십 매장은 ‘슬립맥서’ 침실의 한 단편을 보여준다. 마테라소 매트리스 주변을 자주(JAJU)의 잠옷과 아로마티카의 아로마 오일, 라부르켓의 스킨케어 제품 등이 빼곡히 채우고 있다. 조명부터 디퓨저, 안대, 슬리퍼까지 침구를 제외하면 대부분 다른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다. 마테라소를 운영하는 신세계까사는 “‘수면을 통한 회복’이라는 가치를 근본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좋은 매트리스 위에서 잘 자고 싶어 하는 사람이 침대에 눕기 전까지 보고, 듣고, 맡고, 먹는 모든 것을 관리하고자 하는 욕구를 겨냥했다는 얘기다. 마테라소뿐 아니라 시몬스, 에이스 등 오랜 침대 회사들이 스스로를 ‘수면 전문 브랜드’로 리브랜딩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슬립맥싱 트렌드가 형성한 시장의 한 단면이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침실은 또 하나의 ‘웰니스 놀이터’가 되고 있다. 식음료(F&B)업계는 스트레스 완화와 수면 유도를 돕는 테아닌, 락티움 성분을 넣은 숙면 음료와 밤에 먹는 웰니스 스낵을 쏟아내고 있다. 뷰티 업체들은 자기 전 침구에 뿌리는 필로 미스트와 아로마 오일 라인업을 앞다퉈 내놨다. 명상에 도움이 되는 싱잉볼 같은 아날로그 도구도 인기다. 잘 자기 위해 쓰는 비용을 아끼지 않는 이들이 늘면서 침실에서도 ‘스몰 럭셔리’ 소비 심리가 확산하는 추세다.

다만 질 좋은 수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또 다른 수면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의학 저널에 각종 디바이스로 측정한 수면 관련 지표에 강박증을 느끼는 ‘오소섬니아(orthosomnia)’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완벽한 수면 점수를 받아내려는 데 따른 불안감이 되레 수면의 질을 낮출 수 있다는 우려다. 글로벌웰니스협회는 이런 흐름을 반영해 올해의 수면 트렌드 중 하나로 ‘맥싱’과 정반대에 있는 ‘단순함’을 추가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