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를 박은 사람의 해골, 방부액이 담긴 대형 수조 속 죽은 상어, 박제된 나비, 알약. 모두 현대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데이미언 허스트가 사용한 파격적인 작품 재료들입니다. 1965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난 허스트는 논란과 찬사, 비난과 인기가 동시에 따라붙는 스타 작가입니다.
표본처럼 전시된 죽음을 직면하다
푸른 유리 수조 너머로 입을 벌린 채 떠 있는 거대한 상어가 보입니다. 방부액인 포름알데히드로 가득 찬 거대한 수조 안에 14피트 길이의 상어를 넣은 설치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1991)입니다.
데이미언 허스트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1991)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허스트가 어부에게 ‘사람을 잡아먹을 만큼 큰 상어’를 구해 달라고 의뢰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처럼 긴 작품명에는 우리가 이성적으로는 죽음을 이해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그것을 몸으로 실감할 수 없다는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허스트는 아름다운 서사나 은유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과학 표본처럼 건조하고 적나라하게 전시합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두려움과 무력감으로 회피하기보다, 오히려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언젠가는 끝이 있는 유한한 삶 속에서 죽음을 사유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오늘의 소중함과 생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영국의 저명한 테이트(Tate) 미술관이 소장한 <약국>은 이전의 작은 수납장들이 확장되어 벽면 전체가 유리 너머의 포장된 약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정 장소에 맞춘 설치물(site-specific installation)로 구성되어 1992년 뉴욕 코헨 갤러리에서 처음 전시되었습니다. 카운터 위에 놓인 색수(colored water)가 담긴 네 개의 약병은 고대 원소인 흙, 공기, 불, 물을 상징하며, 신체를 치유하는 아주 오래된 방식들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발 받침 위에 놓인 그릇들에는 벌집(honeycomb) 또는 꿀이 놓여 있는데요, 이는 일종의 메타포입니다. 벌집은 파리를 유혹하지만, 결국 그들을 빠르고 잔혹한 죽음(살충기)으로 이끄는 유인책입니다. 마찬가지로 의약품 역시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을 지니며,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일시적인 수단일 뿐입니다. 의학과 약물은 허스트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우리는 병에 걸리고 아플 때 약을 먹고 의학의 힘을 빌립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역시 일시적인 치유를 제공할 뿐 결국 죽음이라는 대전제 앞에서는 무력한 도구란 점을 지적합니다. 허스트는 사람들이 의학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며 약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상기시킵니다.
또 재미있는 해석의 관점이 있는데요. 이 작품은 현대 의학의 산실인 병원과 실험실을 미술관이라는 공간과 연결합니다. 허스트에게 의학은 예술처럼 '매혹적이지만 환상에 불과한 믿음 체계'입니다. 그는 “왜 어떤 사람들은 의학은 전적으로 믿으면서 예술은 의심 없이 믿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과 생명의 가치를 남다른 예술 언어로 표현한 허스트는 어떻게 동시대 미술의 중심에 올라섰을까요? 그는 대학 시절부터 기획력과 자기 홍보 능력이 남다른 예술가였습니다.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 재학 중인 1988년, 그는 버려진 창고를 전시장으로 삼아 동료들과 함께 단체전 《프리즈(Freeze)》를 기획합니다.
당시 영국은 대처 정부의 긴축 정책으로 공공 예술 지원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었습니다. 미술계는 깊은 침체에 빠져 있었고 젊은 작가들이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간파한 허스트는 기존 제도권의 선택을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무대를 만들겠다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수동적이기보다 주체적으로 움직여 '우리가 우리의 판을 만들자'는 포부를 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 전시가 단지 창의적이고 혁신적이었다는 것만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건 아닙니다. 프리즈가 학생 전시에 머물지 않고 미술사적 사건으로 남게 된 데에는 허스트의 스승인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Michael Craig-Martin)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기존의 장르에 갇히지 않는 창의적 사고를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허스트가 직접 큐레이터가 되어 전시를 이끌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마틴은 자신의 인맥을 동원하여 테이트 갤러리의 관장 등과 같은 영국 현대미술의 핵심 인사들을 창고 전시장으로 직접 불러들였습니다.
이 전시를 통해 결집한 이들이 바로 현대미술의 지형을 바꾼 YBA(Young British Artists)입니다. 트레이시 에민, 마크 퀸 등이 포함된 이 그룹은 성, 폭력, 마약, 죽음 등 도발적인 주제를 거침없이 다뤘습니다. 이들의 작업을 적극적으로 수집한 인물이 바로 광고계 거물이자 컬렉터였던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입니다. 사치의 컬렉팅은 YBA 작가들을 단숨에 국제 미술시장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이후에도 사치는 1990년 《갬블러(Gambler)》 전시에서 허스트의 작품 <천 년(A Thousand Years)>(1990)를 구매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청년 허스트는 작가는 작품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전시를 기획하고 미디어와 자본을 활용하는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의 작품이 도발적이면서도 사유를 촉발하는 방식으로 전시된 것도 주목을 받는 이유였습니다. 과감하고 충격적인 소재를 선택해 논쟁을 일으키되 그 안에 삶과 죽음, 과학과 의학, 인간 존재와 사회 문제에 관한 질문 등 심오한 철학을 담았습니다.
죽음을 입힌 불멸
해골 하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평범한 해골이 아닙니다. 18세기 어느 유럽 남자의 두개골을 본떠 백금으로 주조한 뒤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뒤덮은 조각, 바로 다이아몬드 해골로 유명한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입니다. 이 작품은 2007년 런던 화이트 큐브(White Cube) 갤러리에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데이미언 허스트 <신의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God)>(2007)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허스트는 런던의 한 상점에서 두개골을 구입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오래된 의학용 골격이나 인류학 표본이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거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의과대학 교육이나 연구 목적으로 인체 골격이 유통되었고, 그 일부가 수집품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허스트가 사용한 두개골 역시 이러한 경로로 시장에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두개골은 생물고고학적 분석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radiocarbon dating)을 포함한 정밀 연구를 거쳤습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은 유기물에 남아 있는 탄소 동위원소의 붕괴 정도를 분석해 생명 활동이 멈춘 시점인 대략적인 연대를 추정하는 과학적 분석 방식으로, 고고학과 인류학 연구에서 널리 사용됩니다. 연구 결과 이 뼈는 대략 1720년에서 1810년 사이에 살았던 30대 중반의 유럽 또는 지중해 계통 남성 두개골로 추정됩니다.
허스트는 원래의 두개골을 그대로 전시하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뼈를 본떠 백금으로 정교한 주형을 만들고, 그 표면 전체에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세팅했습니다. 작품에는 총 8,601개의 다이아몬드(총무게 약 1,106캐럿)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요소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바로 치아입니다. 백금 해골 안에 원래 두개골의 실제 치아를 그대로 삽입했습니다. 다이아몬드와 백금 사이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부분입니다. 이 작은 요소가 오히려 작품을 더욱 강렬하게 만듭니다. 모든 것이 교체되고 극대화되었지만 무언가를 씹고, 웃고, 말하던 누군가 살아 숨 쉬던 흔적만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뿌리는 깊습니다. 작가가 대영박물관 소장의 아즈텍 두개골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즈텍 문명에서는 해골이 단순한 공포의 상징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순환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의식과 장식에서 해골 형태가 등장하는 이유도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세계관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오래된 전통인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계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어받았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이 오래된 명제는 중세와 르네상스의 회화와 조각 곳곳에서 두개골과 모래시계와 꺼져가는 촛불로 표현되었습니다. 허스트는 그 관습적인 상징과 전통에 21세기의 언어를 입혔습니다. 죽음을 상기시키되 인간이 만든 가장 값비싼 물질로 그것을 덮어버린 것입니다. 허스트는 ‘죽음이라는 주제가 워낙 무겁기에, 그것을 비웃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다이아몬드는 단순한 재료가 아닙니다. 인간이 희소성에 부여한 욕망의 결정체이자 가치라는 개념이 물질로 압축된 형태입니다. 부패하지 않는 물질로 결국 사라질 육체를 감싸는 이 역설 속에서 작품은 하나의 조각이자 철학적 명제가 됩니다. 인간은 삶의 유한성을 부정하기 위해 종종 불멸의 물질에 집착합니다. 다이아몬드 해골은 바로 그 집착을 극단적으로 형상화한 이미지입니다.
이 작품은 여러 방식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죽음 앞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보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죽음을 견디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의 한 형태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허스트는 사람들이 죽음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숨기거나 장식해 견딜 수 있는 모습으로 바꾸려 한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인간적인 태도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 장면일지도 모릅니다. 눈부신 보석으로 뒤덮인 해골을 바라보며 우리는 묻게 됩니다. 이 반짝임은 죽음을 이겨 보려는 인간의 상상력일까요. 아니면 죽음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일까요.
작품의 영어 제목 ‘For the Love of God’은 직역하면 ‘신의 사랑을 위해서’라는 뜻이지만, 일상 영어에서는 놀람이나 답답함을 표현할 때 쓰이는 감탄사이기도 합니다. 한국어로 옮기면 “제발 좀”, “도대체 왜 그러니” 정도의 뉘앙스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제목은 허스트가 젊은 시절 예술가로 막 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의 기상천외한 작품 구상에 대해 들을 때마다 어머니가 했던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어머니는 종종 “세상에, 대체 다음에는 또 무엇을 하려는 거니? (For the love of God, what are you going to do next)?”라 말했다고 합니다. “제발 좀,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니?”라는 이 일상적인 탄식을 아들은 작품 제목으로 가져왔습니다. 이는 작품의 성격과도 묘하게 겹칩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위에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값비싼 보석을 덮어버린다는 발상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감탄이자 또 누군가에게는 황당함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욕망이 만나는 곳
그렇다면 과연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이 작품은 얼마나 판매되었을까요? 2007년 화이트 큐브 갤러리는 이 작품이 약 5,000만 파운드에 판매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구매자는 익명의 투자자 컨소시엄이라고 밝히면서 말이지요. 세계 언론은 이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허스트는 단숨에 현대미술 시장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살아 있는 작가의 단일 작품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매자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고, 허스트 자신이 거래 구조에 일부 지분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언급되었기에 의문이 남았습니다. 그 의혹은 15년 후 확인됐습니다. 2022년 허스트는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의 소유 구조를 직접 설명하며 진실을 밝혔습니다. 작품이 완전히 팔린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갤러리, 그리고 익명의 투자자들이 지분을 나누어 보유하는 컨소시엄 형태라는 것입니다. 또한 작품이 런던 다이아몬드 거래 중심지 해튼 가든(Hatton Garden)의 보관 창고에 놓여 있다고 말이지요. 완전한 매각은 이루어진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작품의 의미를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완전 매각으로 알려졌던 서사가, 실제로는 작가와 갤러리, 투자자들이 지분을 나누어 보유한 구조였다는 점이 뒤늦게 분명해졌기 때문이지요. 뉴스 보도라는 미디어, 가격이라는 숫자, 익명의 투자자라는 서사가 작품의 상징성과 얽히면서 하나의 거대한 현대미술 사건을 만들어냈습니다.
결국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 다이아몬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인간은 끝내 다이아몬드를 원하게 되는 것일까요. 어쩌면 런던 어딘가의 보관 창고에 놓여 있는 그 해골이 가장 솔직한 답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물건 중 하나가 여전히 어둠 속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 해골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그 빛이 숭고인지, 허영인지, 혹은 그 둘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 채 말입니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살아 있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초상일지도 모릅니다.
허스트의 예술은 죽음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강렬함을 함께 보여줍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만개하고 낙화하는 벚꽃을 그린 <벚꽃(Cherry Blossoms)>(2018~2020) 연작입니다. 자유롭게 흩날리는 벚꽃은 허스트가 1950년대 부상한 액션 페인팅의 영향을 받아 표현한 것입니다. 벚꽃은 일정한 시기에만 피어올랐다가 이내 흩어지며 짧지만 찬란한 아름다움을 남깁니다. 그래서 벚꽃은 종종 사랑과 환희, 그리고 상실의 감정을 동시에 떠올리게 합니다. 허스트는 벚꽃을 통해 평생 붙들어 온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을 반복합니다.
박제된 상어와 죽은 나비, 다이아몬드 해골 등 잔혹하고 충격적인 소재로 죽음을 직면하게 하는 허스트의 작품 앞에서 문득 떠올립니다. 꽃은 영원히 피어있지 않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는 그의 말을 말입니다. 봄꽃 향기가 코끝에 흩날리는 계절입니다. 끝이 있기에 더욱 강렬하고 아름다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시는 봄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