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파른 원화 하락에 기업 경영권도 불안하다

해외 자본이 한국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는 한경 보도(12월 15일자 A1, 3면)다. 올해 1~3분기 해외 기업과 사모펀드(PEF)가 한국 기업 경영권을 사들이기 위해 투입한 금액은 11조4280억원으로 지난해(2조3257억원)의 다섯 배 수준이다. 원화 약세로 달러를 기준으로 한 우리 기업의 몸값이 저렴해진 영향이 컸다.

해외 자본의 국내 기업 M&A를 나쁘게만 볼 건 아니다. 긴 호흡으로 기업을 키울 의지가 있는 해외 자본 유입은 해당 기업은 물론 국가 경제에도 보탬이 된다. 문제는 싼 맛에 투자해 재빨리 투자금을 회수하겠다는 의도로 이뤄지는 불순한 M&A다. 해외 자본이 경영권을 확보한 후 자산 매각과 정리 해고에만 열을 올리면 산업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만성적인 엔저(低)에 시달리는 일본도 한국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지난해 해외 자본이 일본 기업 경영권을 인수한 사례는 193건으로 1998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최악은 해외 투기 세력이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상황이다. 일본은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신주를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 제도를 통해 투기 세력의 공격을 막고 있다. 포이즌 필이 발동하면 공격자의 지분 가치가 희석돼 적대적 M&A 시도를 무력화할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선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매각해 의결권을 부활시키는 것이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다. 하지만 국회가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 이마저 불가능해진다.

원화 약세 국면은 당분간 지속될 소지가 다분하다. 부쩍 커진 적대적 M&A 위협에 대응하려면 기업에 포이즌 필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을 쥐여줘야 한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방안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주가 부양을 위해서라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