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바젤에 지쳤다면?" 자카르타에서 만난 '진짜 아트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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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자카르타 2025 ①‘아트 자카르타(Art Jakarta)’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미술 애호가라면 인도네시아의 대표 아트 페어인 아트 자카르타를 꼭 기억해야만 한다.
획일화된 세계 미술 시장에 균열을 내다
지금, 가장 새로운 아트페어는?
아트 페어 전성 시대다. 세계 주요 도시마다 대표 아트 페어가 있고, 그 시기에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가장 중요한 전시를 하며 성대한 축제를 연다. 하지만 세계 2대 페어 아트바젤(Art Basel)과 프리즈(Frieze)가 런던, 뉴욕, 파리 등 세계 8개 도시를 장악하고 있기에, 다른 모든 페어들이 그들의 행보를 따라가는 것에 급급해진 상황이다. 대부분의 아트 페어는 해외 유명 갤러리를 초대하고, 스타 미술가의 작품을 판매하는 것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페어마다 참가 갤러리와 출품 작가들이 비슷해서 더 이상 페어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미술 애호가도 속출하고 있다. 이미 잘 아는 갤러리, 잘 아는 작가의 작품을 굳이 여러 도시를 오가며 계속 볼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트 자카르타는 시작부터 완전히 다르다. 이 페어는 동남아시아 갤러리를 중심으로 열리며,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시아 작가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서구에서 온 유명 갤러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페어는 활기가 넘치고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신선한 작품을 보여주는 작가들이 가득하다.
올해 참가한 75개 갤러리 중에서 인도네시아 갤러리는 35개다. 인도네시아 베스트 갤러리 10개를 중심으로 전시를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ROH(Jakarta), ara contemporary(Jakarta), Gajah Gallery(Jakarta), ISA Art Gallery(Jakarta), ArtSociates(Bandung), Galeri Ruang Dini(Bandung), Srisasanti Gallery(Yogyakarta), Ace House Collective(Yogyakarta), Orasis Art Space(Surabaya), Nonfrasa Gallery(Bali)가 바로 그 주인공. 갤러리 이름은 낯설지만 이 리스트를 중심으로 페어를 보면 빨리 돌아보기 쉽고, 이 리스트가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관람객을 실망시키는 인도네시아 갤러리는 없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준이 높다.
서울과 로스엔젤레스에서 백아트 갤러리를 운영하는 수잔 백 대표는 지난해 자카르타에 세 번째 화랑을 열었다. 팬데믹 전부터 아트 자카르타에 참여해오다, 인도네시아의 현대미술에 매료되어 아예 갤러리를 연 것이다. 수잔 백 대표는 아트 자카르타가 본격적으로 ‘글로벌 아트페어’로 도약함을 느꼈다고 참가 소감을 밝혔다. 그 동안은 지역 중심의 로컬 페어 성격이 강했다면, 올해는 국제적 갤러리, 컬렉터, 기관 관계자들의 참여가 한층 활발했다고 느낀 것.
“올해는 규모뿐 아니라 작품의 수준, 관객의 태도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변화가 뚜렷했습니다. 아트 자카르타의 큰 장점은 국제성과 지역성이 공존하는 균형감입니다.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인도네시아 특유의 따뜻한 환대와 공동체적인 에너지가 있어요. 우리 갤러리에게 아트 자카르타는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입니다. 올해는 네덜란드계 인도네시아 작가 멜라 야르스마 Mella Jaarsma의 퍼포먼스를 현장에서 선보이며, 컬렉터와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런 생생한 만남과 관계의 형성이야말로 아트 자카르타의 진정한 힘입니다.”
수잔 백 대표는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해외 컬렉터들의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진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이는 단순한 시장적 변화라기보다, 인도네시아 작가의 작업이 국제적인 담론과 미학적 깊이로 확장되고 있다는 증거다.
매년 한국 갤러리들도 아트 자카르타에 참여하고 있는데, 올해는 한국 문화체육관광부ㆍ한국예술진흥원ㆍ신한카드의 지원을 받아 코리아 포커스(Korea Focus) 특별 섹션이 열렸다. 한국의 더프리뷰 아트페어에 참여하는 젊은 갤러리 12곳이 한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여 동남아시아 컬렉터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띠오 갤러리를 제외하고는, 아트 자카르타에 첫 참가하는 젊은 갤러리들이였기에 운송비 등의 부담으로 작품 사이즈의 활기찬 작품을 대부분 가지고 왔다. 보이 그룹 BTS의 RM과 블랙핑크의 지수가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서 유명해진 별관 Outhouse 갤러리의 김둥지 작가 작품 앞에서는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의 기념 사진 촬영이 줄을 이었다. APO 프로젝트의 이미주, 강재원 작가의 작품, 띠오 갤러리의 황규민, 채림, 이소윤 작가의 작품도 인기를 모았다.
코리아 포커스에 참여한 갤러리2는 바로 맞은 편 부스에서 첫 선을 보인 에스더 쉬퍼 갤러리와 동시에 전현선 작가의 작품을 선보여 아시아 컬렉터에게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에스더 쉬퍼 갤러리의 첫 참여는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세계의 유명 페어에 모두 참여하는 이미 너무 유명한 갤러리이기 때문이다. 에스더 쉬퍼는 아트 자카르타의 특성을 고려해 아니카 이, 사이먼 후지와라, 전현선의 작품을 가지고 왔는데, 우고 논디노네(Ugo Rondinone)의 대형 조각이 논란을 자아냈다. 미술 애호가 입장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을 자카르타에서 또 본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지만, 이제 막 미술에 관심을 가진 대중에게는 반가운 출품이었기 때문이다.
페어 부스 중간중간 마다 대형 작품을 선보이는 SPOT 섹션에는 다양한 매체와 주제를 탐구하는 저명한 인도네시아 예술가들이 참여해 열기를 돋웠다. 아르디 구나완(ISA 아트 갤러리), 이페 누르(아라 컨템포러리), 엔드리 프라구스타(레이첼 갤러리), 아디티아 노발리(ROH), 아디 구나완(산카라 아트)의 대형 작품은 미술관과 방문객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페어 디렉터 톰 탄디오는 아트 자카르타는 예술이 인도네시아 창조 경제에 중요한 엔진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확신했다. 예술 문화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국가 정체성을 강화하고, 국제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학문 간 협력의 기회를 열어준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아트 자카르타는 그간 여름마다 야외 조각 행사 ‘아트 자카르타 가든’을 열어 왔는데, 내년부터는 매년 2월에 ‘아트 자카르타 페이퍼’도 시작해 종이로 만든 미술 작품 축제를 세계에 알릴 예정이다.
우리나라에는 70개의 아트 페어가 있다. 프리즈 서울이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자신감으로 더 이상 정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현대 미술의 동남아시아 플랫폼을 목표하는 아트 자카르타의 열정을 보며 21세기 아트 페어의 나아갈 길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문화 기자 이소영은 멤버십 매거진 <스타일 H> <더 갤러리아>에서 일했다. <사진 미술에 중독되다> <서울, 그 카페 좋더라> <전통 혼례>의 저자다. <와인과 사람> <노래하지 않는 피아노> 등을 기획·편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