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관세 전쟁과 고환율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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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수 하나금융연구소장
트럼프는 취임 초기부터 관세 문제를 제기했고 중국을 시작으로 유럽, 일본, 한국 등 주요 국가를 상대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며 개별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 협상이 장기화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1400원 선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이 외에도 대기업들이 5년에 걸쳐 1500억달러 규모의 공장 건립 자금을 투자하고 당분간 서학개미는 미국 주식 투자를 지속할 것으로 보여 외환 수급 측면에서 원화 약세 요인이 강할 수밖에 없다. 또 전 세계 자금이 미국으로 몰리면서 미국 경제도 1%대 중후반의 양호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금리 인하의 불확실성도 커지는 상황이다. 결국 고환율이 ‘뉴노멀’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역사적으로 환율 1400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외환위기(1997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미국의 금리 인상기(2022년)와 국내 정치 불안(2024년) 등 네 번밖에 없다. 최근 들어 그 횟수가 잦아졌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환율 1400원은 위기의 전조(前兆)를 판단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금융에서 중요한 이정표다.
스티븐 마이런 미국 중앙은행(Fed) 이사가 지난해 11월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궁극적으로 달러화 약세를 원한다. 미국에 투자된 자금으로 건설된 공장이 대부분 완공되는 1~2년 후 이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 약달러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집권 초기 ‘제2의 플라자 합의’ 이야기가 나온 이유다.
문제는 이런 기조 변화 속에서도 원·달러 환율이 하락세로 돌아서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달 초 체결된 ‘한·미 환율정책 합의문’에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환율 안정을 위해서는 대외 신인도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
10월은 여러 기업이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우는 시기다. 그러나 환율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연말뿐 아니라 내년도 환율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이른 시일 내에 관세 협상이라도 원만히 타결돼 환율이 하향 안정화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