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와 ‘창고 옷’에서 피어난 패션 예술
입력
수정
[서울패션위크 2026 SS 리뷰 ①]‘패션위크=패션쇼’라는 공식이 일반적이지만, 2026년 SS 서울패션위크에서 패션디자이너 박소영은 당연한 패션쇼 대신 생소한 프레젠테이션을 택했다. 지난 2일 자신의 브랜드 줄라이칼럼(JULYCOLUMN) 아틀리에에서 작품을 보여주는 일종의 전시회를 연 것.
박소영 JULYCOLUMN 쇼
9월 2일, 브랜드 쇼룸
럭셔리 여성복 브랜드 '줄라이칼럼'
순환 디자인이 핵심 가치
이번에 그녀가 내세운 주제는 “Quiet Strength, Living Heritage”. 여성의 내적인 강인함이 투영된 옷에 우리의 살아있는 문화유산 디테일을 더했다. 디자인 테마는 한옥 지붕에 쓰이는 기와. 기와는 유려한 곡선이 겹겹이 이어지는 흐름이 특징. 치마, 상의, 원피스 등 모든 작품에 흐르듯 이어지는 기와 모티브를 녹였다. 특히 목 부분 옷깃을 기와 모양에서 변주한 디자인이 핵심으로, 모시 등 우리 전통 원단에 장인들이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작업해 예술적 완성도를 높였다.
“어릴 적부터 쇼가 끝나면, 사장되는 옷과 남은 재료들이 너무 안타까웠어요. 쇼에 오른 한 벌의 옷은 디자인을 위한 분투, 한땀 한땀 손바느질 등 수많은 이들의 고뇌와 노력의 집합체죠. 온 마음을 다한 창조물에 담긴 기억과 서사를 되살리고 싶었어요. 우리는 모두 기억으로 연결되는 존재니까요.”
-패션디자이너 박소영
그녀의 예술 철학은 일본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 대표 디자이너인 미나가와 아키라와 일맥상통한다. 미나가와 아키라 역시 “옷은 희로애락을 담는 기억의 저장장치”라는 신념을 옷에 투영하는 예술가. 우리가 매일 입는 옷에는 “그날그날의 추억이 담기므로,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미나가와의 예술관은 박소영의 세계에서는 더욱 의미가 증폭된다.
그녀는 ‘윗세대 옷으로 다시 만든 옷에는 이중의 기억과 서사가 담겨있기에 입는 유산’이라고 정의한다. 선대의 옷과 옷감을 활용해 만든 패션에 자기만의 철학을 담는 예술 작업이 여타의 디자이너와 차별화되는 지점. 이번 서울패션위크에서 그녀는 다른 여성 예술가(에스텔 차, 박지향)들과 연대해 함께 한 전시도 선보였다. 3명의 여성 예술가는 순환(cycle)을 주제로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회화, 패션, 설치 예술이 망라된 전시로 서울패션위크의 예술적 다양성에 일조했다.
최효안 예술칼럼니스트/디아젠다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