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다른 '기민리노' 몸짓…4시간 동안 숨죽인 객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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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수석 무용수 김기민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리뷰마린스키발레단에는 ‘동양인 발레리노 최초 입단’이라는 타이틀로 14년째 전무후무한 역사를 쓰고 있는 김기민 수석무용수(33)가 있다. 2011년 입단한 그를 두고 “어떻게 한국에서 러시아 발레의 근간인 바가노바의 전통을 완벽하게 익혔는가”라고 묻던 러시아 사람들은 이제 전민철을 보며 “한국 발레 교육이 러시아 발레 맥을 잇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한국이 낳은 기적"
긴 기다림 끝에 김기민이 데지레 왕자로 등장하자 객석이 홈런을 목도한 야구장처럼 변했다. “김기민이야. 신이 내린 김기민이 나타났어!” 김기민은 14년 동안 공연 때마다 탁월한 기술과 감정 표현을 선보여 마린스키발레 팬 사이에서 ‘한국이 낳은 기적’으로 불렸다. 그의 팬은 그를 ‘기미냐’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김기민에게도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특별하다. 그가 10세 때 처음 본 전막 발레였고 그의 첫 스승 발레리노 이원국이 데지레 왕자로 연기한 무대다. 그는 러시아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처음 봤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울었고 어머니는 저를 보며 미소를 지었죠. 그때 ‘발레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김기민의 상대역 오로라 공주를 연기한 무용수는 빅토리야 테레시키나(43)로, 러시아에서 국민의 예술가 칭호를 받은 뛰어난 발레리나다. 공연 후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한 김기민은 테레시키나에 대해 “음악을 해석하고 어떻게 동작할지 딱 맞아떨어지는 이심전심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이날 두 사람의 2인무는 시종일관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공연 전 마주한 안드리안 파데예프 예술감독의 말이 비로소 김기민 퇴근길에 겹쳤다. “테크닉은 무용수에게 기본입니다. 회전을 몇 번 하고 다리를 얼마나 높이 들어 올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죠. 무대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 눈빛까지 발레에 깃들어야 합니다. 관객과 하는 상호작용도 무용수에게 중요한 요소가 되지요. 극장의 법칙이란 게 있어요. 무대 위 예술가는 단순히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연기자이자 해석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김기민은 누구?
1992년생인 김기민은 2011년 마린스키발레단에 연수생으로 입단해 19세 때 ‘해적’의 알리 역으로 데뷔했다. 2012년 솔리스트로 승급하고 2015년에는 마린스키 역사상 가장 젊은 수석무용수가 됐다. 그는 재능과 예술성을 겸비한 무용수로 여러 차례 국제적 인정을 받았다. 국제 발레 콩쿠르를 섭렵한 것은 물론 2016년에는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버전의 ‘라 바야데르’(솔로르 역)로 무용계 최고 영예로 여겨지는 ‘브누아 드 라 당스’상을 받았다. 2023년에는 ‘파라오의 딸’에서 타오르 역으로 ‘최고 남자 무용수’ 부문에서 황금 소피트를 수상했다. 올해에는 러시아 혁명기를 다룬 작품인 ‘아가씨와 훌리건’에 데뷔해 러시아 사회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오는 11월에는 일본 도쿄에서 ‘돈키호테’의 바질을 연기할 예정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