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탈을 쓴 신랄한 현실 비판, 전지적 독자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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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리뷰10여 년 넘게 읽어오던 소설이 어느 날 현실이 된다면? 예를 들어, 눈을 떴더니 소행성 B-612를 떠나 여러 행성을 여행하게 된다면. 그리고 그 행성에서 여우를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고... 가 아니라 화룡, 어룡 등등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면. 말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웹소설의 열혈 독자, 김독자의 현실이 진짜 '헬', 즉 자신이 읽었던 웹소설에서 등장하는 지옥도로 바뀌어 버린 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동명 웹소설을 영화로...
300억 제작비 투입된 대작
현실 고발과 판타지 장르의 결합으로 주목
독자가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고 씁쓸히 퇴근하던 날, 그가 탄 지하철은 갑자기 웹소설 속 생존 게임이 벌어지는 지옥철로 변모한다. 다행히 그는 10여년 동안 외우듯 읽어오던 이 소설의 설정과 생존 방법을 이미 터득한 상태다. 그러나 그는 역을 하나씩 지나칠 때마다 변수가 생기고, 독자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절망한다. 다행히 독자의 곁에는 독자만큼이나 따듯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서로를 지키는 소설의 주인공들이자 동료들인 유상아(채수빈), 이현성(신승호), 정희원(나나) 등이 있다. 서로의 생존 그리고 무엇보다 공멸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이 소설의 주인공, 유중혁(이민호)의 생존을 위해 이들은 이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더불어 가지고 있는 모든 코인까지.
그의 이러한 기구한 운명이 바뀌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현실 세계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하철/지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곳에서 그는 왕따가 아닌 선한 무리의 리더로, 코인을 제일 많이 가진 권력자로, 앞의 운명을 꿰뚫고 있는 선지자로 변모한다. 물론, 또 한 번의 역설은 그가 왕따이자, 피해자이면서 노동자였기 때문에 이 소설에 집착했고, 그랬기에 이러한 환생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영화는 분명 낮지 않은 목표를 가졌지만 비교적 만족스럽다. 특히 여름방학 시즌의 메이저 관객층인 중·고등학생들에게 더욱 어필할 만한 프로젝트로 보인다. 하나의 지하철역을 지날 때마다 통과해야 하는 아젠다가 있고, 아젠다를 성취하기 위해 적절한 (코인을 이용한) 무기를 활용해야 한다는 설정을 통해 영화는 아케이드 게임의 쾌감과 서바이벌 게임/영화의 서스펜스를 영리하게 혼합한다. 나아가 신파와 한국 영화의 사족처럼 등장하는 콩트가 없다는 것은 이 영화의 장점이다.
여름 시장이 초라하다. 한국 영화의 최대 시장중 하나인 여름 시장에 (<좀비딸>을 포함) 대작이 두 편밖에 없다는 사실도 그러하지만, 영화의 완성도 보다 시장의 존폐 위기를 먼저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 역시 현실의 씁쓸함을 더한다. 산업의 염려와 불안이 계속되는 시기이지만 <전독시>는 그럼에도 작게 나마 기대를 걸어 볼 만한 작품이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