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개 한마리, 망가진 슈퍼맨도 다시 날게 한다

[리뷰] 영화

초심으로 돌아간 '슈퍼맨'
제임스 건 감독이 주는 정의의 메세지
영화 <슈퍼맨>은 재밌다. 이때까지 나온 <슈퍼맨>은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러다가 <맨 오브 스틸> 같은 작품에서는 다크 히어로로 변신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맨>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초심으로 돌아가되 긍정적이고 밝게 됐다. 게다가 현실적인 캐릭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를 엄청나게 강화했다. 이번 슈퍼맨(데이비드 코런스웻)은 무지하게 두들겨 맞는다. 그럼에도 결국 어려움을 이겨낸다. 그 서사가 촘촘하고 재미있다. 실망을 주지 않는다. 슈퍼맨이 패배할 수는 없다.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영화 &lt;슈퍼맨&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처음 장면부터 슈퍼맨은 역사상 처음으로 패배를 맛봤다는 자막과 함께 땅에 추락한다. 꽝! 슈퍼맨의 고난은 영화 내내 이어진다. 그는 절대 같이 있으면 안 되는 크립토나이트(슈퍼맨의 고향인 크립톤에 있었던 방사성 유해 물질. 슈퍼맨 같은 크립톤인을 죽일 때 쓰인다. 슈퍼맨은 이 물질 옆에 있으면 초능력을 잃는다) 때문에 서서히 말라 죽어 가기도 한다. 이 크립토나이트는 극 중반에 나오는 또 다른 메타 휴먼, 렉스 메이슨(앤서니 캐리건)이 자기의 몸을 변신시켜 이를 아예 생성시키는데 그는 일종의 엘리먼트 맨, 곧 원소 인간이다.

이 무슨, 다 큰 어른이 돼 가지고 ‘쓰잘데 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느냐’고 핀잔할지 모르지만, 이 오랜만에 만나는 SF 판타지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즐겁게 만들고 잠깐이나마 다른 세상, 아수라장인 현실을 벗어나, 더 나은 세상에 있다는 행복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저쪽 세상에서는 메타 휴먼들이 여럿 있고 거기에 정의의 사도 슈퍼맨까지 있다는 거야 글쎄, 하고 중얼거리게 된다. 물론 슈퍼맨의 세상도 지금처럼 혼란의 도가니인 건 마찬가지다. 예컨대 가상의 국가 보라비아의 대통령 바실 구르코스(즐라트코 부리치)가 옆 나라인 자한푸르를 침공하는 일 등이 그렇다.

슈퍼맨은 이 국제 분쟁에 개입하려 하고 최악의 빌런인 렉스 루터(니콜라스 홀트)는 그런 슈퍼맨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다한다. 루터는 원소 인간 메이슨의 아들을 구하려 혼신의 힘을 다하는 슈퍼맨에게 (네가 여기 있으니) 자한푸르는 이제 끝났는걸? 하면서 비아냥댄다. 이때 슈퍼맨은 히힛 하는 표정으로(배우 코런스웻은 실제로 그런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말한다. “자한푸르에는 내 친구들을 보냈지(롱).” 자한푸르에서는 슈퍼맨과 썩 좋은 관계는 아니어도, 아니, 오히려 라이벌 관계인 메타 휴먼들, 곧 그린 랜턴(네이선 필리언)과 호크 걸(이사벨라 머세드), 미스터 테리픽(에디 가테지) 등이 보라비아의 침공을 격퇴하는 중이다. 자한푸르는 지켜진다.
영화 &lt;슈퍼맨&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제임스 건의 슈퍼맨은 홀로 지구를 지키지 않는다. 그는 친구이자 라이벌들과 연대와 연정을 한다. 사실 오만가지 일이 벌어지는 지구의 모든 일을 슈퍼맨 혼자서 다 처리할 수는 없다. 이번 슈퍼맨은, 단연 선두 주자이긴 해도 슈퍼맨급 인간 중 하나로 기능한다. ‘원 오브 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슈퍼맨이 지키려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지구의 평화이다. 보라비아와 자한푸르는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혹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을 은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제임스 건은 보라비아 대통령 바실 구르코스를 이스라엘의 네타냐후처럼 그려낸다. 다만 보는 사람들로 하여 그걸 느낄 수 있는 사람만 느끼게끔 한다. 영화는 아는 만큼 보이고 즐길 수 있는 법이다. 제임스 건은 지금 이스라엘 사태에 슈퍼맨의 정의가 개입돼야 한다고 빙 둘러서 얘기하는 격이다, 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슈퍼맨의 강아지 이름이 크립토인 것도 재미있다. 슈퍼맨이 크립토나이트에 가까이 가면 안 되지만 어쨌든 고향의 물질이다. 양가성이 있다. 강아지 크립토도 슈퍼맨에게는 양가적이다. 엄청나게 천방지축인 이 강아지는 잭 러셀 테리어 계(인간의 언어 27가지를 이해한다고 알려진 개)의 잡종으로 보이는데 슈퍼맨도 제어가 안 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퍼맨이 위기에 처하면 어디서든 달려와서 그를 구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슈퍼맨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크립토를 가능한 떨어뜨려 놓고 싶어 하는 척, 이 강아지를 돌보는 데는 마음을 다한다.(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슈퍼맨이 크립토에게 진심인 이유가 있다. 크립토의 주인은 따로 있다) 악당 렉스 루터가 크립토를 납치하자 슈퍼맨은 불같이 분노한다. 루터 일당의 소굴, 본부로 쳐들어가 오직 이 한마디를 반복한다. “내 강아지 어딨어??!!” 사람들은 슈퍼맨이 지구보다 강아지를 먼저 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
영화 &lt;슈퍼맨&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슈퍼맨은 원자 인간 메이슨이 애지중지하는 갓난아기 조이를 악당 루터가 인질로 삼자 아이를 구하려 혼신의 힘을 다한다. 메이슨도 슈퍼맨의 그 마음을 알고 크립토나이트 물질을 없애 주고 나중에는 자한푸르를 구하기 위해 그린 랜턴 팀에 합류한다. 이제 메타 휴먼들은 하나의 팀이 된다. 슈퍼맨은 아기 조이와 강아지 크립토를 구하고 메타 휴먼들은 자한푸르를 지킨다. 작은 성과가 큰 성공으로 이어진다. 작은 우물은 큰 바다가 된다. 한 개인을 구하지 못하면 나라든 세계든 지구든, 무엇이든 지킬 수 없다. 의미가 없다. 초인이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때론 초인이 된다. 영화 <슈퍼맨> 속 지구의 평화는, 그렇게, 비록 불안하지만 지켜진다. 정의의 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시적이나마 평안하고 행복해진다. 그런 것이다. 정의는 세상을 구하기까지는 못할지언정 잠시나마라도 평화를 지켜 줄 수는 있다. 정의는 추상으로든, 슈퍼맨 같은 구체적 캐릭터이든, 존재해야 한다. 정의가 존재한다는 믿음 자체는 매우 귀중한 것이다. 제임스 건의 <슈퍼맨>이 주는 메시지이다.

제임스 건 감독은 클라크 켄트(슈퍼맨의 인간 이름. 신문사 스포츠 기자이다)의 애인 로이스의 이미지를 부활시켰다. 1978년 만들어진 <슈퍼맨> 1편에서 슈퍼맨 역은 크리스토퍼 리브가 맡았다. 로이스 역은 마곳 키더가 했었다. 이번 <슈퍼맨>에서 조이스 역의 레이철 브로즈너핸은 마곳 키더 이미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사실 이번 슈퍼맨 제임스 코런스웻도 크리스토퍼 리브를 가장 많이 닮았다. 제임스 건이 의도적으로 둘을 가장 많이 닮도록 만들었다. 분장, 헤어스타일 등이 그렇다. 크리스토퍼 리브는 승마 중 낙마해 목이 부러져 전신마비로 고생하다 사망했다. 마곳 키더는 약물 중독자로 죽었다. 제임스 건의 <슈퍼맨>이 처음으로 돌아간 것, 그러나 그러면서 동시에 처음의 이야기를 자기식으로 재창조한 것(메타 휴먼 캐릭터를 많이 개입시킨 것)은 같지만, 똑같지만은 않은 영화를 만들려는 것, 곧 새로운 슈퍼맨의 시리즈를 시작하겠다는 감독으로서의 욕망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의 제목에 다른 부제 없이 1978년의 1편처럼 그냥 <슈퍼맨>이라고 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영화 &lt;슈퍼맨&gt;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슈퍼맨>은 여름 시장의 구원자일까. 슈퍼맨은 속속들이, 그리고 족족 망하고 있는 한국 여름 극장을 구해낼 것인가. 슈퍼맨은 그런 것, 곧 영화산업의 위기니, 극장의 위기 따위 잠시 좀 잊으라고 한다. 지구 반 바퀴를 눈 깜작할 사이에 돌아오면서 빙긋 웃으며 그냥 잠시 즐기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다시 휙 지구 반대편 상파울루로 날아간다. 마음껏 즐기라. 갔다 올게. 영화는 종종 재미가 우선이다. <슈퍼맨>이 그렇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영화 &lt;슈퍼맨&gt; 포스터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