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미식이 이어지는 곳, PKM 갤러리

[arte] 김현정의 미술을 미식하다

삼청동에 위치한 PKM 가든 레스토랑
삼청동, 전통과 현대의 공존 : PKM 갤러리

전통이 깃든 서울 삼청동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이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일지 모른다. 고즈넉하고 정겨운 한옥 풍경 속에 현대적 세련미가 맞물린 삼청동은 묘한 매력을 보여준다. 삼청동의 정취가 짙은 통의동 길을 따라 청와대 쪽으로 걷다 보면 조용한 돌담 끝자락에 PKM 갤러리가 있다. 대로와는 멀리 떨어진 채 단아하게 존재하는 이 갤러리는 전통과 현대 그리고 일상과 예술이 공존하는 이곳의 경계를 아우른다. PKM은 청와대 옆 작은 주택을 개조해 현대 미술의 색과 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공간을 만들고, 2001년 설립 이래 한국 추상미술의 정수를 소개하며 다양한 작가들의 전시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이끈다.
삼청동 골목을 걷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PKM갤러리 외관 / 사진. © 김현정
여백을 통한 관람객과의 상호작용

갤러리 본관에서는 6월 5일부터 7월 12일까지 ‘The Interplay (상호작용)’이라는 부제로 서승원 작가의 개인전이 열렸다. 단색과 기하학을 바탕으로 한 그의 회화는 화면 속 색채의 밀도와 여백의 구성이 하나의 울림을 만들어 조화로운 긴장감의 세계로 안내한다. 단순한 추상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색과 면, 빛과 공간은 끊임없이 교차하며 새로운 차원의 균형을 만들어낸다. 전시 제목처럼 요소들의 상호작용은 화면을 넘어 관람자의 시선에도 영향을 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작품뿐 아니라 전시장의 동선과 배치까지도 하나의 추상적 조형 언어처럼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여백이 유려하게 연결된 공간 안에서 관람객은 움직이고 머무르며 각자의 언어로 해석한다.
서승원 작가의 작품이 어우러진 갤러리 내부 / 사진. © 김현정
작품에서 자연 그리고 예술에서 일상으로의 확장

PKM 건물은 감상의 흐름을 유기적으로 구조화한다. 단단한 회색 벽돌로 쌓아 올린 외관 아래, 갤러리 내부는 높은 층고가 인상적인 화이트 큐브로 설계되어 작품에 집중하게 만든다. 전시장 한 켠의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가장 먼저 커다란 사각 유리창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창은 빛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은행나무를 비롯한 외부 풍경을 실내로 스며들게 해 관람객의 시선을 작품에서 자연으로 확장시킨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이기도 한 이곳은 레스토랑 정원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다. 갤러리 본관의 옥상은 레스토랑의 앞마당으로 연결되며, 건물의 구조적 흐름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열린 시선을 마음에 담고 PKM 가든 레스토랑에 오르면 탁 트인 정원과 서울 시내 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사방이 유리로 트인 시원한 구조 속에 풍경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닌 공간의 일부가 된다. 작품과 자연 그리고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부드럽게 함으로써 갤러리와 레스토랑은 물리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지만 긴밀하게 맞닿아있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은행나무와 외부 풍경 / 사진. © 김현정
화려함보다는 본질을 보는 긴 호흡

작가들의 예술적 시간을 오랫동안 묵묵히 지원해온 PKM의 박경미 대표는 긴 호흡으로 만들어가는 방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작품과 작품 사이 충분한 여백을 두고, 전시가 관람객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 다음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건넨다. 이는 단순한 전시 기획을 넘어 감상의 흐름 전체를 설계하는 태도다. 이러한 미학의 철학은 레스토랑에서도 이어진다. 장식적인 화려함보다는 식사의 본질과 흐름에 집중한 구성이다. 와인을 포함한 주류가 없는 점도 이곳만의 특징이다. 그 덕분에 식탁 위에는 함께한 사람과의 대화와 웃음이 머물고 창밖으로 스며드는 풍경은 마음을 감싼다.
남산타워까지 한눈에 보이는 레스토랑의 정원 / 사진. © 김현정
PKM 가든 레스토랑, 풍경을 담은 식사

레스토랑의 메뉴는 복잡하지 않으며 파스타와 피자를 중심으로 간결하게 구성된다. 그중에서도 ‘PKM 가든 파스타’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시그니처 메뉴이다. 이 파스타는 향긋한 루콜라가 듬뿍 얹혀 있고, 케이퍼의 산미와 매콤한 골뱅이의 쫄깃한 식감이 조화를 이룬다. 면의 익힘도 훌륭하며, 플레이팅은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다. 또한 피자는 식감과 조리 방식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모든 피자는 페이스트리 도우로 구워져 바삭하면서도 결이 살아있고, 일반적인 피자 도우보다 씹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식감이 훨씬 입체적이다. 특히, ‘스켈리온 피자’는 얇게 채 썬 대파를 수북이 올리고, 그 위에 수제 잠봉을 더해 마치 삼겹살을 대파에 싸 먹는 듯한 친근함을 준다. 익숙하지만 이국적인 느낌이 마치 컨템퍼러리 한식의 한 조각을 맛보는 듯하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드넓은 잔디 정원이 펼쳐진 테라스 좌석에 앉을 수 있다. 저 멀리 남산타워를 비롯한 서울 시내의 전경이 한 시야에 들어온다. PKM 레스토랑에서의 경험은 단지 맛에 머물지 않고, 풍경과 공간이 함께 어우러진 느린 감상에 가깝다. 즐거운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로 오늘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좌측부터] PKM 가든 파스타, 스켈리온 피자/ 사진. © 김현정
그림 같은 풍경이 머무는 식탁 / 사진. © 김현정
미술에서 식사로 이어지는 하나의 결

PKM은 한국 추상미술의 정수를 일관된 시선으로 조명해왔다. 이 가운데 유영국의 작품은 이곳의 예술 철학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한국 최초의 추상 화가로 불리는 그는 자연의 곡선과 색을 캔버스 위에 옮기며 여백 속에서 울림을 만들어 냈다. 그의 작업은 해석보다 직관을 우선시하는 미학적 태도로 이어진다. 이는 해설보다 여백을 중시하는 PKM의 전시 철학과 맞닿아 있다. 최근 PKM은 샘바이펜의 개인전 ‘LAZY’를 통해 전혀 다른 결의 시도도 선보였다.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재조합하고,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유쾌하게 비트는 그의 작업은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술을 지향한다.

이처럼 PKM은 추상의 깊이를 기반으로 동시대 문화의 실험성과 다양성을 포용하며 예술의 지형을 유연하게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시 철학은 단지 작품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감상의 전체 흐름을 설계하는 태도로 연결된다. 관람객에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의 철학은 레스토랑이라는 또 다른 공간에서도 느껴진다. 전시와 식사는 별개의 경험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 공간은 같은 결을 따라 흐르며 하나의 큰 맥락을 완성한다. 전통이 가득한 삼청동에 자리한 PKM 갤러리와 레스토랑은 느슨하게 맞물린 흐름 속에서 미술과 식사 모두를 현재진행형으로 풀어낸다.

김현정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