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플랫폼 기대감 고조...기업 "보안·인센티브 설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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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한국형 DPP 대응 데이터 스페이스 플랫폼이 기업의 탄소 데이터 산정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다양한 규제 및 고객사 통합 대응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데이터 보안에 만전을 기하고 참여 확대를 위한 인센티브 설계를 주문했다.[한경ESG] 커버 스토리
ESG 데이터 시대, 디지털 경제 달군다 ⑤ 참여 기업 제언
글로벌 차원에서 탄소 규제가 생겨나고, 고객사의 공급망 데이터 요구가 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개별 차원에서 탄소 데이터 수집 시스템 구축 및 데이터 산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는 디지털 제품 여권(DPP) 대응 한국형 데이터 스페이스 구축 사업에 대한 산업계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업들은 한국형 데이터 스페이스 작업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 지금까지 규제와 고객사 각각 대응 시 통합이 어려웠던 상이한 기준이 통일되며 표준화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또 국가 차원에서 유럽연합(EU)과 상호 연계해 데이터 정합성을 인정받으면 추가 작업을 하지 않아도 한 번의 작업으로 대응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기업 기밀 보호, 적절한 탄소DB(데이터베이스) 구축, 인센티브 마련 등 보완 과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의 협조 아래 철강, 의류, 배터리 등 각 업종의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한국형 데이터 스페이스 플랫폼에 대한 기대와 제언을 들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철강업계는 이미 DPP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글로벌 탄소 규제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 김광수 세아베스틸지주 ESG팀장은 “탄소 정보는 이제 규제 대응을 넘어 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며 “특히 고객사들이 요구하는 탄소 정보 범위와 정밀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해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 각 규제별 요구 기준이 상이하고, 고객사별로 다른 방식으로 데이터를 요청하면서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다. 김 팀장은 “CBAM과 고객사 요구 기준이 제각각이라 데이터 산정값이 다르고, 정보가 여러 채널로 분산돼 통합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데이터 스페이스 플랫폼이 EU 카테나-X와 연계돼 통일된 기준으로 수렴된다면 편의성과 업무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원가 등 기밀정보에 대한 정보유출을 고려해야 해 정보 공개 범위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면 좋겠다”라며 “EU와의 상호 호환성도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의류업계는 EU의 ‘지속가능한 순환 섬유 전략’ 등 새로운 규제에 직면했다. 정회욱 비와이엔블랙야크 전략기획팀 지속가능성 담당 매니저는 “유럽 시장에서 성장하기 위해 DPP 도입은 필수”라며 “공급망은 복잡한 데다 변수도 많기에 해당 플랫폼이 표준화된 탄소DB 기준값을 잘 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데이터 요구가 방대하면 실무와 공급망 모두 부담이 커진다”며 “주요 소재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하고, DPP뿐 아니라 EU 에코디자인 규정(ESPR) 전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화학물질 제한을 위한 에코라벨 등 다른 규제와 연계되도록 해 기업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무엇보다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적시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범사업 참여 기회나 우수 기업 지정 등 다양한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는 데이터가 제품 안전성과 순환경제 실현에 핵심 역할을 한다. 박재홍 피엠그로우 대표이사는 “배터리 데이터는 안전·고장·성능·수명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재활용과 재사용 가능성도 높아진다”며 “데이터 스페이스 플랫폼이 이런 데이터의 신뢰성을 보장하고 적절한 인증을 통해 글로벌 표준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배터리 공급망 노하우나 기밀 데이터는 블랙박스 형태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며 “수요자 측면에서 필요한 정보공개 기준도 잘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엠그로우는 최근 블록체인 기반 DPP 데이터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와 함께 유망 서비스 영역에서 데이터를 활용하는 다양한 모델을 구축하는 데 DPP 플랫폼이 데이터 공급 역할을 한다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은 무엇을 바라는가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는 ▲표준화된 데이터 기준 정립 ▲기업 기밀정보 보호 체계 구축 ▲관련 제도와 연계 ▲참여 기업에 대한 실질적 인센티브 마련 등으로 모인다.
김광수 팀장은 “탄소정보가 기업은 물론 국가 핵심 산업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정부가 실제로 탄소저감이 가능한 방향으로 제도적 지원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회욱 매니저는 “탄소DB 고도화와 기업 참여 유인을 통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박재홍 대표이사는 “국산 인증 체계와 데이터 신뢰성 확보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한국형 데이터 스페이스 플랫폼이 각 산업별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면서도 글로벌 시장과 연계되는 표준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한다면 국가 차원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인센티브 등으로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면서 플랫폼이 잘 활성화되도록 돕는다면 국내 데이터 서비스 산업 육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구현화 한경ESG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