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뿔을 감싼 파도 위의 식사...도쿄 미술관에서 만난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

[arte] 김현정의 미술을 미식하다

도쿄 국립신미술관의 레스토랑
‘브라세리 폴 보퀴즈 르 뮤제’
도심 속 곡선의 미학, 국립신미술관

물결치는 도쿄의 고층 빌딩 사이 유리로 덮인 곡선형 건물이 하나 있다. 국립신미술관(The National Art Center, Tokyo)은 건축가 쿠로카와 키쇼가 설계했으며, 곡선형 유리 커튼과 유기적인 동선이 인상적이다. 사각형의 격자나 직선의 축보다는 물결치는 파도 같은 곡선의 흐름으로 정의되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건축물의 규모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공간감이 먼저 느껴진다.

국립신미술관은 소장품 없이 기획전만으로 운영된다는 특징이 있다. 유기적인 곡선을 따라 설계된 건물처럼, 전시가 바뀔 때마다 분위기도 함께 달라진다. 구조는 유연하고 구성은 개방적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미술관 내부는 전시장 외에도 뮤지엄 숍과 카페,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어 시민들에게 하나의 휴식처가 된다. ‘숲속의 미술관’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이곳은 도쿄 도심 속에서도 드물게 조용하고, 개방적인 예술 공간이다.
파도같은 유려한 곡선의 국립신미술관 외부 전경 / 사진출처. © NACT (THE NATIONAL ART CENTER YOKYO)
뒤집힌 원뿔 구조 위에 얹어진 우아한 소용돌이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숲속을 정처 없이 거닐다 보면 만나게 되는 쉼터처럼 미술관 내부를 탐험하다 보면 브라세리 폴 보퀴즈 르 뮤제(Brasserie Paul Bocuse Le Musée, 이하 폴 보퀴즈)라는 레스토랑을 마주할 수 있다. 이곳은 건물 안에서 가장 아늑하면서도 독특한 곳에 위치한다. 미술관 로비 중앙을 관통해 솟은 뒤집힌 원뿔 구조 위에 레스토랑이 얹어진 형태로,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우아한 소용돌이의 형상이다. 공중에 떠 있는 이 레스토랑은 건축과 요리가 하나의 구조로 연결된 서사를 가진다. 사방에서 빛이 흘러 들어오는 레스토랑은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그 공간에서의 식사는 구조 안에 놓인 시간의 일부 같다.
미술관 3층에 위치한 폴 보퀴즈, 뒤집힌 원뿔 속 풍경 / 사진. © 김현정
[도쿄 국립신미술관의 레스토랑 ‘브라세리 폴 보퀴즈 르 뮤제’]

공간이라는 여백 위에 놓인 폴 보퀴즈

폴 보퀴즈는 미술관 3층에 떠 있지만, 꼭짓점이 지면을 향해 단단히 뿌리내린 모습에서 레스토랑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선보이는 기본에 충실한 프렌치 요리는 건축 안에서 시작되며, 공간이라는 여백 위에 놓인다. 재료 본연의 특징을 잘 담은 런치코스는 시작부터 다르다.

일반적인 식전 빵과 버터의 조합 대신 특별한 페이스트가 함께 나온다. 바로 고기로 만든 페이스트인 ‘리옹식 리예트’이다. 리예트를 바게트에 살짝 얹어 한 입 넣는 순간, 녹진하고 짭짤한 리예트와 바게트의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져 식사에 대한 기대감을 돋군다. 메인으로 나온 존 도리(John Dory) 생선은 바삭하게 구워진 껍질에 더해지는 진한 버터소스가 전반적인 요리의 깊이를 더한다. 주요리를 돋보이게 한 앙트레는 촉촉한 관자 요리로, 버섯 리조토와 수란이 함께 곁들여져서 심심할 수 있는 요리에 변주를 준다.

마지막 디저트는 특제 크렘 브륄레이다. 숟가락이 닿자 표면이 가볍게 부서지며, 쌉싸름한 커피와 환상의 궁합을 보인다. 무겁지 않은 단맛과 긴 여운의 바닐라향에서 공간감이 느껴져 그 시간에 앉아 있는 식사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가져온다.
[좌측부터] 리예트와 바게트, 존 도리, 크림브륄레와 커피 / 사진. © 김현정
식사 그 이상의 경험, 공간의 여운

독특한 구조와 더불어 셰프의 명성에 어울리는 완성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폴 보퀴즈는 미술관의 유연함과 잘 맞닿아 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외벽 유리 커튼의 파동이 만들어내는 흐름을 따라 고요히 흘러갔다. 은은한 여운 때문인지 식사가 끝난 뒤에도 미술관을 벗어나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한 끼의 식사와 한 번의 방문이 이토록 오래 남는 이유는 공간 전체가 하나의 생명과도 같은 ‘숲속의 미술관’이었기 때문이다. 그 별칭에 걸맞게 연인과 가족은 물론 젊은 세대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다. 다시 말해, 누구나 편안하게 이 웅장한 공간을 부유하듯 채우고 있다.

영화처럼 흐르는 도쿄의 순간

국립신미술관은 최근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의 배경으로 등장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주인공들이 서로를 찾아 헤매는 장면 속, 유리벽을 따라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이 공간이 그대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곳이 성지순례가 된 이유는 단순한 배경 때문이 아니다. 만남과 엇갈림을 암시하듯 요동치는 동선에서 공간에 감정을 불어넣고, 보는 이들의 마음에 진폭을 만들어낸다. 건축과 미식, 그리고 그 흐름이 하나로 이어지는 곳. 도쿄를 방문한다면 한 번쯤 직접 걸어보는 경험은 분명 특별할 것이다.
영화 ‘너의 이름은’ 속 장면을 현실에서 마주한 순간 / 사진. © 김현정
김현정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