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발 글로벌 관세 전쟁…가격 경쟁력 유지하려면 ‘이전가격’ 정책 수립 서둘러야 [안진 클로즈업]

[한경 CFO Insight]

김선형 한국 딜로이트 그룹 통상&디지털 통합서비스 그룹 이사
김선형 한국 딜로이트 그룹 통상&디지털 통합서비스 그룹 이사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 재계의 2025년 상반기 최대 화두는 단연코 트럼프 행정부 발 글로벌 관세 전쟁이다. 미국은 4월 2일 전세계를 대상으로 10%의 보편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으며, 한국에 대해서는 25%의 상호관세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상호관세에 대해서는 90일간의 유예 기간을 두었다. 한국 정부는 이 유예기간 동안 우리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기업들 입장에서는 관세 문제가 언제, 어떻게 해결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수출 기업들은 미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관세 부담을 감수하며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유지하려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일부 주요 기업은 생산지 이전도 검토 중이지만, 결정과 실행까지는 수년이 소요되기에 당분간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안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중장기적인 미국 내 생산 확대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에 약 31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동시에 단기적으로는 오는 6월까지 미국 내 차량 판매가격을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중장기 전략과 병행해 관세 부담에도 불구하고 가격 경쟁력을 유지함으로써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에서의 입지를 지키기 위한 신중한 대응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상호관세 문제가 설령 한국 정부의 협상으로 해결되더라도 10%의 보편관세는 별개의 문제로 기업들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보편관세 부과 시에도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방안은 없는 것일까?

미국 내 자회사를 통해 거래하는 우리 기업들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관세 이슈로 한정하기 보다는 ‘이전가격(Transfer Pricing)’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전가격이란 다국적 기업이 각국 자회사를 통해 거래할 때 설정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의미한다. 미국의 관세 정책이 이전가격과 연결되는 이유는 바로 관세가 이전가격을 기준으로 부과되기 때문이다. 이전가격은 각국의 세무 당국이 다국적 기업의 세금 회피를 막기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관세 정책과 맞물릴 경우 기업의 세무 리스크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한국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할 경우, 이 세율은 이전가격인 FOB(Free on Board, 본선인도조건) 가격을 기준으로 적용된다. 여기서 FOB가격이란, 수출자가 물품을 선적항에서 선박에 실을 때까지의 비용을 포함한 가격을 의미한다. 즉,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미국으로 수출될 때, 해당 제품의 이전가격이 어떻게 책정되는지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만약 다국적 기업이 자회사를 통해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하면서 이전가격을 너무 낮게 설정하면 수입 시 부과되는 관세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미국 내 자회사의 이익이 증가하면서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납부해야 하는 법인세는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이전가격을 높게 책정하면 더 많은 관세를 내지만, 이로 인한 미국 내 자회사의 이익이 감소해 미국에서 납부해야 하는 법인세는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이 이전가격을 너무 낮거나 높게 설정하는 경우 세무 당국의 조사를 받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세금 추징 및 벌금 등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최적의 이전가격 설정 단순한 세금 절감을 넘어서, 전체적인 세금 부담과 세무 리스크를 함께 고려한 전략적인 의사결정이 요구된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많은 기업들은 미국 내 자회사의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입 가격을 낮추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이전가격과 관세 측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출국(한국)에서 수입국(미국)으로의 이전가격을 조정하여 FOB 가격을 낮추는 경우, 한국 국세청은 이를 이전가격의 인위적인 조정을 통한 의도적인 세금 회피로 간주하고 법인세 추징과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한, 미국 세관(CBP; Customs and Border Protection)은 수입가격 인하를 관세 회피 목적으로 의심하여 관세 기준 가격을 재산정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추가적인 관세 추징 및 벌금이 부과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솔루션은 이전가격 정책의 수립이다. 만약 기업이 사전에 OECD 이전가격 지침 및 각 국가별 규정을 반영한 이전가격 정책을 사전에 수립하고, 이를 근거로 정상가격 원칙에 맞게 가격을 조정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면 세무 당국의 의심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전가격 정책의 수립은 세무 리스크를 관리하고,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미 많은 국내외 글로벌 기업들은 이전가격 정책을 수립하고 철저한 모니터링 활동을 통해 세무조사나 관세조사 과정에서 국가 간 특수관계거래가 정상가격임을 입증하고 과세 리스크를 크게 줄이고 있다.

이전가격 정책의 중요성은 미국 내 관세 문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세관은 특수관계자간 거래에서 수입가격 조정의 적정성을 인정하기 위한 5가지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충족하면 기업은 사전에 유권 해석(Ruling)을 받아 수입가격 조정에 대한 적정성을 미리 확보할 수 있다. 유권해석을 미처 받지 못했을 경우에도, 사후 정산(Reconciliation)을 통해 수입가격 인하를 인정받고 관세 환급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이를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5가지 요건은 다음과 같다:

1. 미국의 이전가격 규정(IRC 482)을 준수한 이전가격 정책 문서가 수입시점 이전에 존재해야 한다.
2. 납세자가 이전가격 정책을 미국내 소득세 신고에 사용하고, 그에 따른 조정된 가격이 소득세 계산에 반영되어야 한다.
3. 회사의 이전가격 정책이 품목 별로 가격 책정 및 조정 방식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어야 한다.
4. 회사는 이전가격 정책에 따른 조정분을 회계 장부에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
5. 조정된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요인이 부재해야 한다.

위의 5가지 요건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이전가격 정책의 ‘사전적’ 수립’이다. 기업들이 이전가격 정책을 수립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각 자회사의 기능과 위험을 철저히 분석한 후, 거래 유형과 품목별로 매우 세밀하고 정밀한 이전가격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자회사의 유형에 따라 일률적으로 목표 이익률을 설정하는 방식이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 자회사의 기능 위험을 반영하여 체계적이고 세밀한 이전가격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이는 세무 리스크와 법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장기적인 기업의 경쟁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수립된 이전가격 정책이 실질적으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정비가 필수적이다. 많은 기업들이 이전가격 정책을 수립하고도 이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를 방지하려면 거버넌스를 정비하고, 성과 평가 등 경영 관리 제도와 이전가격 정책이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IT 시스템을 활용해 이전가격 정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작업에 의존할 경우 대규모 기업에서는 정책 운영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응하는 이전가격 정책 수립은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세금 추징 및 관세 부담을 피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다. 단기적으로는 FOB 가격 인하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지만, 이로 인한 이전가격 및 관세 이슈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공급망 분석 및 생산지 경쟁력 분석 과정에서 이전가격 정책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업들은 하루빨리 이전가격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 관세와 세금 문제를 예방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임을 명심해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시점에서 이미 늦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점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