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약이다” 데미안 허스트, 그 말은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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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선경의 미술관이 던지는 질문들현대 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라는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허스트는 미술계에서 다양한 이슈로 인해 자주 입방아에 오르는 작가이다. 그중 가장 빈번한 이슈는 바로 그가 작품으로 벌어들이는 어마어마한 금액일 것이다. 지난 2020년에 영국 선데이 타임즈(Sunday Times)는 영국의 부자 리스트를 발표했다. 선데이 타임즈가 추정한 대로라면 허스트의 자산은 원화로 약 4,992억 원이다. 이는 살아 있는 영국 작가 가운데는 가장 많은 액수이다.
데미안 허스트 컬렉션으로 가득 찬 런던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
허스트는 작가로서만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름난 미술품 컬렉터이기도 하다. 영국 런던 남부 복스홀 중심부에 자리 잡은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Newport Street Gallery)는 허스트가 자신의 컬렉션으로 꾸린 공간이다. 허스트는 무명 시절부터 작품 컬렉팅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과 다른 작가 작품을 맞바꾸는 방식으로 컬렉션을 시작했다고 한다.
전시회 이후, 허스트는 자신의 컬렉션을 더 적극적으로 공개할 생각을 가졌다. 그렇게 허스트는 2015년, 자신의 컬렉션을 공개할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를 개관하게 되었다.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는 빅토리아 시대에 무대용 배경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로 쓰던 건물이다. 건축에는 영국의 이름난 건축가 그룹인 카루소 세인트 존 건축팀이 참여했다.
갤러리는 총 다섯 개 건물이 이뤄져 있는데, 그 가운데 세 개는 빅토리아 시대 스튜디오를 되살린 것이고 갤러리 양쪽 끝의 건물들은 새로 지어진 것이다. 건물의 구조상 갤러리는 복스홀 지역의 철로를 마주 보고 있다. 갤러리는 이를 이용해 철로에서 보이는 외벽에 LED 패널을 설치해 지나가는 열차 승객들에게 갤러리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특히 갤러리의 톱니 모양의 지붕과 건물 내부의 나선형 계단이 방문객들의 시선을 끈다. 갤러리는 지난 2016년에 영국 최고의 신축 건물에 수여하는 RIBA 스털링상을 수상했다.
Pharmacy Restaurant & Bar는 1997년 런던 노팅힐에 실제로 문을 연 레스토랑이다. 2003년 문을 닫을 때까지 레스토랑은 런던 시민이 손으로 꼽는 이른바 ‘힙’한 공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덧붙여, 레스토랑은 지난 1998년에는 칼튼 런던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최고의 디자인 레스토랑 상을 받았다.
왜 약국을 찾으면서 이런 외진 곳에 있을까 싶었다. 어리둥절했다가 갤러리에서 ‘약국’을 본 뒤에는 웃음이 나왔다. 약국을 찾던 여행자 가족이 구글맵에 ‘Pharmacy 2 Café’라고 표시된 허스트 작품 사진을 보고 약국으로 착각하고 주변을 서성거린 것이다. 레스토랑은 2003년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2016년부터 레스토랑 내부 인테리어를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에 상설 전시하게 되었다. 허스트는 이 작품에 <Pharmacy 2>라는 제목을 붙였다.
허스트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약은 신뢰하면서 예술은 믿지 않는 점이 놀랍다”며 “자신은 예술이 약처럼 치유 기능을 한다고 믿는다”고 말한 적 있다. 하지만 예술의 치유 기능을 강조하는 허스트의 말은 예술 상업화에 앞장선다고 비판을 받는 그의 행보와는 서로 어긋나 보인다.
그러나 나중에 작품을 실제로는 매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론이 밝혀냈다. 허스트가 작품을 실제로 판매하지 못했으면서도 엄청난 작품 가격으로 미디어의 이목을 끌었다.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가 자신의 작품을 홍보하고 나아가 작품 가격까지 높이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의심을 샀다.
허스트는 2008년 개인 경매 ‘Beautiful inside My Head Forever’로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이 경매에서 갤러리나 딜러를 통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자기 작품을 판매했으며 총 1억 1,100만 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2,397억) 작품을 팔아 치웠다.
이에 대해 허스트가 한 시도를 미술 시장에서 작가가 주도권을 가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도 있다. 반대로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시도였을 뿐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다. 어떤 시각으로 보던 그가 작가로서 그리고 컬렉터로서 미술 시장의 생태계를 남다르게 꿰뚫어 보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는 ‘작가 허스트’뿐 아니라 ‘컬렉터 허스트’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부각시키고 있다. 즉, 갤러리를 일종의 ‘허스트 컬렉션 알리기’의 마케팅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는 미술을 공공에게 개방하고자 하는 이상과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는 전략을 교묘하게 결합한 공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