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안중근의 갈등과 딜레마...어둠 속에서 빛을 품고 나아간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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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꽁꽁 얼어붙은 두만강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는 남자. 며칠을 굶고 걷기만 한 남자는 이내 얼음 바닥 위로 쓰러진다. 눈보라가 거세지면서 남자의 눈썹 위로 눈이 쌓인다. 태아처럼 누워 코트의 옷깃을 부여잡고 있는 남자. 남자의 눈앞에는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얼음길이 남아있다.
1년 후 안중근은 동료들인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공부인(전여빈), 최재형(유재명), 이창섭(이동욱) 등과 함께 모여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했던 것은 이들 중 밀정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작전 내용은 모두 일본군에게 전달되고,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안중근은 밀정을 역이용해 먼저 하얼빈에 당도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뮤지컬 영화의 형태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최근 제작된 <영웅>을 포함 과거의 안중근 영화들은 비교적 공통적으로 안중근의 영웅적인 면모, 즉 그의 성품과 업적을 신화적으로 그리는 경향을 보였다. 물론 이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지만 영화적인 맥락에 있어서는 다소 천편일률적인 접근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하얼빈>의 가장 큰 차별점이라면 같은 영웅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맹목적인 인물의 재현을 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얼빈>은 영웅 안중근이 아닌, 젊은 군인 안중근이 하얼빈으로 향하기까지의 2년여의 세월과 그 사이에 벌어진 여러 가지 시행착오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안중근과 동료들의 크고 작은 희생들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보이는 이들은 나라를 구하고자 모인 독립군들이기도 하지만 “결혼이나 해서 소소하게 살고 싶은” 젊은이들이기도 한 것이다. <하얼빈>에서 비춰지는 안중근은 이렇게 목숨을 걸고 모인 이들보다 더 뛰어나지 않다. 이들은 같은 목표와 희망을 가지고, 비슷한 정도의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운명 공동체다. 궁극적으로는 이들의 염원과 안중근의 고귀한 희생으로 인해 거사가 행해진 것이다.
마치 느와르를 연상 시킬 정도로 어둡고 감각적인 촬영은 <하얼빈>의 하얼빈 거사 시퀀스를 더욱 인상적으로 남게 한다. 마치 클라이맥스의 프리마돈나를 비추듯, 하얼빈에서 마침내 적을 마주하는 안중근은 어둠을 강조했던 영화의 전반과는 반대로 밝은 빛을 품고 등장한다.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외치는 "카레아 우라” ('대한민국 만세’의 러시아어 표현)는 그러기에 더더욱 경이롭고 숭고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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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