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관객 2000명을 일으켜세운 임윤찬의 '쇼팽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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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지난 11월 29일일본 작곡가 토루 타케미츠는 한국의 윤이상과 비슷한 존재감을 갖는 인물이다. 그는 자연과 일본의 정통 궁중음악 ‘가가쿠’에서 영감을 찾았다. 지난 주 미국 뉴욕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 홀에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다이 후지쿠라의 ‘얽힘(Entwine)’은 타케미츠의 대표작 ‘레퀴엠’에서 느껴지는 먹먹한 공간감이 군데군데 드러난 곡이었다.
링컨센터 데이비드 게펜 홀서 열린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카즈키 야마다가 지휘하는 뉴욕필,
다이 후지쿠라의 '얽힘(Entwine)'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 연주해
피아노 협연으로 나선 임윤찬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선보여
대비의 미학 돋보이는 타건으로 청중 압도
빠르고 리드미컬한 파편들이 세포분열을 일으키듯 반복적으로 얽혀가며 뻗어나가는 장면에서는 필립 글라스나 존 애덤스의 구조적 동질성이 엿보였다. 마치 가장 일본적인 풍경을 가장 서양적 언어로 구사했던 타케미츠의 진화된 모습을 보는 듯했다.
쇼팽 협주곡 2번은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며 관객들의 환호가 터져 나오는 곡은 아니지만 그 어떤 곡보다도 내면의 젊음과 아름다움이 싱그럽게 꽃 피우는 작품이다. 협주곡은 독주자가 절대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절반에 가까운 지분은 함께 무대에 오르는 상대에게 달려있다. 이 부분이 솔로 연주자에게 득이 될 수도 있지만, 필연적인 상대와의 호흡이 오히려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섬세함의 극치를 보여준 2악장에서는 마치 살얼음판 위에서 균형을 잡고 걸어가는 듯한 아슬아슬함이 느껴졌다. 극적 표현을 양보하고라도 소리가 안정되게 내려앉는 느낌을 조금 더 살렸으면 어땠을까.
3악장은 첫 두 악장과는 달리 피아노 솔로가 먼저 시작한다. 지휘봉을 잡은 야마다는 쇼팽을 지휘하는 내내 솔리스트를 앞서나가거나 몰아세우지 않았고, 오케스트라를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았다. 임윤찬이 차안대를 한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구간은 물론, 루바토가 극적으로 표현한 지점까지 세밀하게 호흡을 맞춰갔다.
2부에서 연주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에서는 전체적인 밸런스를 중시하는 지휘자의 성향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1악장의 금관악기군과 팀파니가 호령하는 부분의 임팩트가 아쉬웠고, 꿈결 같은 3악장의 클라리넷 솔로는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4악장에서는 충분히 달아오르지 않은 채 터뜨린 듯한 부분이 있었다. 이 작품은 피아노 협주곡 2번 못지않게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다. 힘들고 무겁게 헤쳐가는 과정에서 모인 에너지를 소모해 가며 서사를 풀어가야 한다. 흠잡을 데 없는 호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했던 목적지에 너무 쉽게 도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