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예술로 다시 태어난 '젊은 달'의 도시 강원도 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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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영식의 찾아가는 예술 공간강원도 영월은 그간 폐광과 단종 유배지로만 알려져, ‘힙(Hip)’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러나 7월 맑은 여름날에 찾아간 영월은 그러한 선입견을 깬다. 더 이상 폐광 지역도 단종 유배지도 아닌 힙한 ‘예술의 고장’으로 변모해 있었다.
강원도 영월서 만난 작은 미술관
'젊은달와이파크' 이야기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아닌
지역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것
미술관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한 재고
영월에 들어서면 도로 옆으로 박물관, 미술관을 안내하는 표지가 쭉 이어진다. 1999년 국내 최초 책 박물관이 개관된 이후 영월에는 수십 개가 넘는 박물관, 미술관의 개관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조선민화박물관, 동강사진박물관, 별마로천문대, 곤충박물관, 국제현대미술관 등 20여곳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의 목적지는 영월의 많은 미술관 중에서도, 그 이름처럼 영월을 젊게 만드는 ‘젊은달와이파크’다. 그런데 차량 내비게이션이 ‘젊은달와이파크’(이하 ‘젊은달’)가 가까워졌음을 알렸지만, 미술관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미술관 입구 삼거리 교차로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붉은 대나무숲이 건물 뒤편 푸른 나무 사이로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젊은달’이 있었다. 미술관이 스스로를 일상에서 떨어뜨리지 않고, 일상의 공간 속에 들어와 있었다.
<붉은 대나무>는 밤이면 조명으로 둘러싸인다. 낮에는 햇살 아래에서 선명하게 빛나던 붉은색이, 밤이 되자 조명을 받으며 더욱 강렬한 붉은 빛으로 변모한다. 낮의 붉은색이 단순한 생명력을 상징했다면, 밤의 붉은색은 열정과 신비로움을 더해 영월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다.
최옥영 작가의 프로젝트는 작품 자체가 완결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사람, 미술관과 지역의 만남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이 만남은 작품과 관객이 교감하는 순간일 수도 있고, 작품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상황일 수도 있다. 따라서 그의 설치작품이 놓인 공간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현실의 공간과 시간이 만나는 곳이다.
최옥영 작가의 의도는 기존 미술의 권위적 태도를 벗어나, 공공의 영역과 삶의 영역으로 관람객들을 초대하는 데 있다. 그 초대의 중심에 젊은 영월을 만들려는 '젊은달' 프로젝트가 있다. 영월은 원래 '편안하게 넘어가는(寧) 고개(越)'라는 의미인데, 최옥영 작가는 이를 '젊은(영) young 달(월) moon'으로 재해석해 지금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목성>의 내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세계이다. 태어난 그 순간으로 돌아가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듣는 듯한 평안을 느낄 수 있다. <목성> 안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이 찾는 포토존은 목성 꼭대기에 뚫린 구멍을 통해 쏟아진 빛이 바닥을 비추는 곳이다. 마치 태양의 빛을 받아들여 별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주는 장소다.
<붉은 파빌리온>은 <붉은 대나무>와 같이 금속 파이프로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붉은 파빌리온>에서 관람객들은 최옥영 작가의 독창적인 작품 <거울 도마뱀>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붉은 강관이 거울에 반사되어 마치 도마뱀의 무늬처럼 일렁이는 붉은 물결을 만들어낸다.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면 거울에 비치는 물체가 일렁이는 듯한 시각적 효과가 나타난다. <거울 도마뱀>은 단순한 반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거울에 일그러져 비추는 자기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자신이 작품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다.
‘젊은달’을 떠나며, 미술관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다양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생각해 봤다. ‘젊은달’에는 매년 1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고 있는데, 이는 영월의 이미지를 젊고 생동감 있게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과거 영월은 비참하게 죽은 단종의 장릉(莊陵)이 있는 곳으로 비극적인 붉은 색을 떠올리게 했다(‘단종’의 ‘단(端)’은 ‘붉을 단(丹)’ 아니라 '꼭대기'라는 의미지만 단종의 생애 때문에 ‘붉을 단’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젊은달’의 상징색인 붉은색이 단종의 붉은색을 대신해 영월의 색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제 미술관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한다. ‘젊은달와이파크’에서의 하루는 영월의 변화를 체험하는 시간이었고 이곳이 어떻게 지역 사회를 젊은 공간으로 바꾸고 있는지 느끼게 했다. 영월은 이제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최영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