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같은 용암동굴 샘물 솟는 용천수 피서지로 안성맞춤 자리물회·한치물회·개역 등 여름철 별미 "더위야 가라"
올여름 기나긴 장마 속에도 제주는 한낮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와 열대야가 밤낮으로 이어지고 있다.
높은 습도와 기온 탓에 밖을 나서면 끈적끈적한 땀이 흐르고 불쾌지수는 덩달아 올라간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날씨가 더욱 무더워지고 있다지만 한여름 더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냉감 소재를 이용한 기능성 속옷도, 에어컨과 같은 각종 냉방기기도 없던 옛날 제주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더위를 이겨냈을까.
예로부터 이어져 오는 제주만의 색다른 피서방법을 알아보자.
◇ 가지각색 제주 전통 피서법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한여름 제주. 낮이든 밤이든 더위를 피하기 좋은 안성맞춤 장소는 사계절 푸른 '바다'다.
아이들은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 물놀이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하루해가 저문다.
반면, 어른들은 바닷가에서 일명 '모살뜸'을 즐겼다.
모살은 모래를 뜻하는 제주어로, 모살뜸은 쉽게 말해 모래찜질이다.
공항에서 동쪽으로 10㎞가량 떨어진 제주시 삼양해수욕장은 검은모래로 유명하다.
해안 현무암 지대를 덮은 흑사장이 아담하게 펼쳐진 이곳은 예부터 여름철만 되면 신경통과 피부병 등 각종 질환을 치료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모래찜질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삽으로 한 사람이 드러누울 만큼 깊게 모래를 파 공간을 만들고, 일정 시간 여름 볕에 모래가 달궈질 때까지 기다린다.
모래가 달궈지면 70도가 넘을 정도로 뜨거워지는데 간혹 화상을 입을 수도 있어 사람들은 삼베옷이나 소매가 긴 옷을 입고 들어간다.
검은모래 속에 들어가 있다보면 10분도 안 돼 몸이 후끈후끈 달아올라 전신에 땀이 난다.
찜질을 받고 그대로 일어나 바다로 가서 모래를 씻고 오면 피부가 반질반질해지고 몸이 아주 가뿐해진다고 한다.
한 무리 사람들이 발끝에서 목까지 검은모래를 덮고 양산이나 파라솔 아래로 얼굴만 내민 채 찜질하는 모습은 이곳 해변에서 볼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이다.
올여름 삼양해수욕장에서는 7월 중순부터 지역의 모살뜸 전문가들이 이 같은 이열치열 피서체험을 돕는다.
제주의 독특한 피서법은 이뿐만이 아니다.
바닷가 주변에서 샘솟는 일명 '산물'을 즐기는 것이다.
'산물'은 말 그대로 '살아 샘솟는 물'(용천·湧泉)이란 뜻의 제주어다.
용천수(湧泉水)는 빗물이 한라산이나 곶자왈 등지에서 스며들어 땅속을 흐르다가 지층이 깨지거나 열린 틈을 통해 지표면으로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샘물을 말한다.
제주 사람들은 제주공항에 인접한 도두포구의 '오래물'과 삼양해수욕장의 '샛다리물', 곽지해수욕장의 '과물', 애월해안산책로의 시작점에 있는 '하물', 함덕해수욕장의 '고두물', 서귀포 예래동의 '논짓물' 등 일 년 내내 18도의 용천수가 흘러나오는 노천탕에 몸을 담가 더위를 피했다.
일단 용천수 안에 들어가면 뼛속까지 시린 찬 기운에 1분을 버티기 힘들 정도다.
이외에도 제주의 역사를 담은 사진집을 들여다보면 음력 7월 15일 백중날 사람들이 폭포수를 맞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여성들이 우비를 뒤집어쓰고 물을 맞으며 몸을 잔뜩 움츠린 모습은 흐릿한 흑백사진이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더위를 날릴 수 있을 정도로 시원하게 느껴진다.
제주에는 예부터 '백중날 물맞이'하러 가는 풍속이 있다.
백중날 물을 맞으면 위병, 허리병, 열병을 비롯한 속병까지 고쳐 준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심지어 '백중물은 약물(藥水)'이라 해서 사람들은 한라산에서 흘러 내려와 바다로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기도 했다.
비단 백중날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서귀포 소정방폭포 또는 원앙폭포 등 자연폭포에서 한여름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을 맞는 도민과 관광객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제주 사람들은 시원한 냉기가 흐르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더위를 피하기도 했다.
제주에는 많은 용암동굴이 있는데 그 중 만장굴, 협재굴, 쌍용굴, 미천굴 등 이름난 동굴은 더위를 피하기 위한 안성맞춤 장소다.
바깥 기온이 최고 35도 안팎을 오르내려 걷기가 어려울 정도일 때도 동굴 내부는 냉장실과 비슷한 12∼14도를 유지해 시원하다 못해 소름이 끼칠 정도의 추운 느낌이 들어 더위를 싹 가시게 한다.
◇ "자리·한치물회 먹고 더위 안녕∼"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더위를 이겨내는데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