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CFO 리포트] (3) 숫자만 계산하던 美CFO, 이사회 참가 늘어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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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사베인스 옥슬리法 이후 입지 강화미국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왔다. 특히 2001년 엔론 회계부정 사태가 터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경영진들이 서로 짜고 회계장부를 조작해오다 적발된 엔론 회계부정 사태는 미국 기업들과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렸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2002년 내부통제와 공시의무, 이사회의 책임을 크게 강화한 ‘사베인스 옥슬리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사업보고서 제출 시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CFO가 서명하도록 했다. 회계장부가 정확하지 않을 경우 이들이 형사처벌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CFO의 책임과 역할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이 같은 추세와 더불어 CFO가 이사회나 CEO의 전략적 파트너로 기업 성장에 적극 기여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아졌다. 세계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언스트앤영이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10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 같은 변화를 잘 보여준다.
당시 매출 10억달러 이상의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CFO가 집중해야 할 분야(복수응답)’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65%가 ‘이사회의 전략적 파트너’라고 답했다. 이어 ‘내년 예산책정 및 전망(61%)’ ‘리스크관리(57%)’ 등이 뒤를 이었다. CFO의 전통적인 역할로 인식되는 ‘재무관리’나 ‘일반회계’에 집중해야 한다는 응답은 각각 34%와 20%에 불과했다.
CFO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에서도 분위기 변화를 읽을 수 있다. ‘CFO는 더 이상 숫자만 알아서는 안된다’는 문항에 69%의 응답자가 ‘매우 동의한다’, 19%가 ‘약간 동의한다’고 답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에 그쳤다.
CFO가 더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기업 안팎의 기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더욱 커졌다. 세계가 불확실성과 변동성에 휩싸이면서 CFO들은 이사회 회의실에 더욱 자주 들어가게 된다. IBM의 윌리엄 후슬러 재무관리 담당 글로벌 리더는 “금융위기 이후 CEO들은 CFO들에게 단순한 숫자가 아닌 향후 전망, 리스크 관리, 가격 결정에서 제조에 이르기까지 전 가치사슬에 걸친 통찰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전략 컨설팅회사인 맥킨지가 2009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CFO들의 책임 확대 추세는 그대로 드러난다. CFO들은 전략수립에서부터 리스크관리, 신용관리, 재무계획, 재무관리, 사업개발 등 맥킨지가 분류한 14가지 업무 영역에서 모두 책임이 확대됐다고 응답했다. 맥킨지는 “이 같은 역할 확대에도 불구하고 이에 상응하는 조직개편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기존의 전통적 역할과 새로운 역할을 모두 부여받은 CFO들의 어깨가 계속해서 무거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