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난 아일랜드 시민 데이터센터 건설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세계 각지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 6일과 7일 아일랜드, 핀란드 등 유럽 15개국에서 100여 개 시민단체가 데이터센터 반대 시위를 벌였다. 7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도심에서 시위대가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의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성난 아일랜드 시민 "데이터센터 안 된다" > 데이터센터 건설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세계 각지로 확산하고 있다. 지난 6일과 7일 아일랜드, 핀란드 등 유럽 15개국에서 100여 개 시민단체가 데이터센터 반대 시위를 벌였다. 7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도심에서 시위대가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고 의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일랜드 더블린 서부의 데이터센터 집적단지 프로필파크.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농지이던 이곳에 거대한 회색 건물이 줄지어 들어섰다. 미국 밴티지데이터센터스는 이곳에 초대형 데이터센터 2개 동과 자체 발전소를 짓고 있다. 전력망 제약이 심해지자 데이터센터가 발전설비까지 갖춘 복합 산업시설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14일 더블린 도심은 국제 인공지능(AI) 정상회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헤나 비르쿠넨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은 “유럽은 5~7년 안에 데이터센터 용량을 세 배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장 밖에서는 ‘에너지 흡혈귀와 일자리 도둑은 사절’이라는 구호를 내건 ‘앵그리 데이터센터’(데이터센터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규탄 목소리가 이어졌다. 데이터센터 강국 아일랜드의 빛과 그림자를 압축한 풍경이다.

미국에선 데이터센터 드라이브에 대한 불만이 선거 향방을 갈랐다. 지난 3일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데이터센터 건설 일시 중단 및 규제 강화를 공약한 민주당 후보가 텍사스와 조지아, 오하이오 주지사에 당선됐다. 전력요금 상승과 용수 부족, 환경 부담 우려가 선거에 반영됐다. 금융시장도 요동쳤다. 5일 미국 증시에선 데이터센터 규제 강화 우려에 나스닥지수가 5.5% 급락했다.

국내에서도 ‘반데이터센터’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수도권에 전력망 확보와 주민 반발이 사업 추진의 주요 걸림돌로 떠올랐다. 주민 동의가 일률적인 법적 필수 요건은 아니지만, 민원이 거세지면 인허가와 착공이 지연돼 개발 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데이터센터 확충을 늦출 수도 없다. 국내 상업용 데이터센터 공급은 지난해 836㎿에서 2030년 2270㎿로 약 2.7배로 늘어날 전망인데 AI와 클라우드 수요가 더 빠르게 증가해 약 670㎿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전력 부족에 자체 발전설비도 짓는 더블린 > 아일랜드 더블린 서부 프로필파크에서 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이 한창이다. 전력망 여력이 부족해지자 자체 발전설비도 함께 짓고 있다.  민경진 기자
< 전력 부족에 자체 발전설비도 짓는 더블린 > 아일랜드 더블린 서부 프로필파크에서 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이 한창이다. 전력망 여력이 부족해지자 자체 발전설비도 함께 짓고 있다. 민경진 기자

美 빅테크 품은 아일랜드 급성장…한해 부가가치만 3.3조원 달해
전력망 수용 한계로 주민 반발…전문가 "사회 전체 이익 고려해야"

유럽의 데이터센터 강국으로 도약한 아일랜드가 성장의 역설에 직면했다. 데이터센터가 국가 전체 전력 소비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면서 전력 부족이 현실화했다. 데이터센터와 자체 발전소가 나란히 들어서는 풍경은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발전 능력 확보를 데이터센터 설립의 전제 조건으로 내거는 등 관련 규제도 깐깐해지고 있다.

◇빅테크 투자 몰린 아일랜드

지난달 14일 아일랜드 더블린 프로필파크에서 차량으로 10분 남짓 떨어진 그레인지캐슬 비즈니스파크. 글로벌 제약 기업의 공장과 대형 데이터센터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화이자와 다케다 등이 먼저 터를 잡았고,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가 데이터센터 건설을 시작한 데 이어 2014년 구글이 가세했다. 한때 한적한 농지가 펼쳐진 더블린 서부가 첨단 제조업과 디지털 인프라를 아우르는 산업지대로 탈바꿈한 것이다.

아일랜드는 영어권 유럽연합(EU) 회원국이라는 이점에 낮은 법인세와 풍부한 정보기술(IT) 인력을 바탕으로 미국 빅테크의 유럽 거점을 잇달아 유치했다. 서늘한 기후와 유럽·미국을 잇는 해저케이블 연결망도 데이터센터 산업 성장을 뒷받침했다.
"이러다 전기 다 빨린다"…국가전력 30% 먹는 '흡혈귀' 정체
글로벌 컨설팅 기업 KPMG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데이터센터 IT 전력 용량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5배 이상 늘었다. 전체 전력 용량의 88%는 초대형 데이터센터가 차지한다. 경제적 성과도 상당하다. 2024년 데이터센터 건설·운영이 창출한 부가가치는 22억유로(약 3조3000억원), 직·간접 및 유발 고용 효과는 1만9500명에 달했다.

◇전력망 포화한 더블린

급성장의 대가는 전력망에 차곡차곡 쌓였다. 지난 10년간 아일랜드 전체 전력 소비 증가분의 약 77%가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했다. 특히 신규 수요가 더블린 일대에 집중되면서 전력망의 수용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 전력망 운영 기관 에어그리드는 2021년 말부터 더블린권 신규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접속을 사실상 제한했다. 산업 성장의 원동력이던 집적화가 추가 투자를 가로막는 병목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같은 병목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데이터센터가 국가 전체 전력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34년 31%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급기야 아일랜드 에너지규제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신규 데이터센터에 전력 사용량의 최소 80%를 신규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도록 했다. 전력망을 쓰는 사업자에게 자체 발전과 공급 확대 책임까지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밴티지데이터센터스가 프로필파크에 약 100㎹A 규모의 자체 발전설비를 건설하는 것도 전력망 제약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이다.

대규모 데이터센터 투자가 지역사회에 얼마나 많은 실익을 남기는지도 논쟁거리다. 건설 과정에서 상당한 고용이 발생하지만 완공 이후 상시 운영 인력이 많지 않아 직접 고용 효과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일랜드의 성공과 시행착오는 AI 데이터센터 유치에 속도를 내는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도 2024년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따라 일정 지역에서 10㎿ 이상 전력을 새로 사용하려는 사업자에게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적용하고 있다. 전력망의 수용 능력과 부담 완화 방안을 사전에 심사하는 제도다. 다만 아일랜드와 달리 신규 재생에너지 조달과 발전 능력 확보를 전력망 접속 조건으로 의무화하지 않았다.

패트릭 브로디 유니버시티칼리지더블린(UCD) 교수는 “데이터센터 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적지 않다”며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조성할지는 결국 사회 전체의 이익과 공공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블린=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