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 호황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비(非)반도체 업종, 특히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경기는 부진한데 고금리·고물가로 비용 부담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확산 등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성장을 위한 투자에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 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은 0.69%로 집계됐다. 8월 기준으로 2016년 8월(0.87%) 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8월 말 기준 중소기업 연체율은 1.0%에 달했다. 2024년 0.78%, 지난해 0.89% 등으로 빠르게 높아졌다. 대기업 연체율(8월 말 기준)도 2024년 0.05%에서 지난해 0.15%, 올해 0.39%로 치솟았다.
기업들은 은행에서 빌린 돈을 설비 투자보다 월급을 주고 원자재를 구매하는 등의 운전 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래 투자보다 ‘버티기’를 위한 대출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올 상반기 전(全) 산업 운전자금 대출 증가액은 45조2000억원으로, 시설자금 대출 증가액(16조3000억원)의 약 2.8배에 달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운전자금 증가액이 시설자금의 1.4배 수준이었다. 불과 1년 만에 기업의 자금 수요가 투자에서 운영으로 크게 이동한 것이다.
특히 제조업에서 이런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제조업 시설자금 대출 증가액은 올 1분기 4조4083억원에서 2분기 1조3651억원으로 69% 줄었다. 반면 운전자금 대출 증가액은 1분기 6조5829억원, 2분기 7조22억원으로 증가세가 가팔라졌다. 2분기 제조업에서 늘어난 대출금(8조3673억원) 가운데 83.7%가 운전자금이었다. 도소매업 역시 올 2분기 시설자금 증가액은 352억원에 그쳤지만 운전자금은 1조4210억원 늘었다. 소비 부진과 비용 상승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한 차입이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번 돈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 비중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 비중은 46.3%에 달했다.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을 밑도는 한계기업 비중 역시 지난해 19.1%로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호황으로 경상수지 흑자가 쌓이며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격하게 하락한 것도 비반도체 수출기업엔 악재다. 특정 업종 호황으로 갑자기 영업이익이 15~20% 증발하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최상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플레이션으로 각국 중앙은행이 긴축 기조로 돌아서 반도체 호황의 수혜를 보지 못하는 업종과 자영업자는 더 힘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