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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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투자 열풍으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던 미국 증시가 하루 만에 무너졌다. 민주당의 중간선거 승리로 데이터센터 규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AI 투자 비용과 수익성을 둘러싼 의문까지 겹치면서 미국 주식시장에서 약 3조2000억달러가 증발했다. 달러당 1340원을 적용하면 약 4288조원에 달한다.

5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나스닥종합지수는 전장보다 1421.52포인트(5.52%) 급락한 2만4315.00에 거래를 마쳤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833.06포인트(3.44%) 내린 5만1523.06,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334.89포인트(4.36%) 떨어진 7353.73에 마감했다.

S&P500지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발표로 시장이 충격을 받았던 2025년 4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나스닥지수는 지난달 사상 최고점보다 11.9% 내려 통상 고점 대비 10% 이상 하락을 뜻하는 기술적 조정장에 들어섰다. 나스닥100지수의 낙폭은 6.4%에 달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시장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하자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기대에 다우지수는 3.0%, 나스닥지수는 1.4% 올랐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 규제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전날 상승분은 장 초반 불과 6분 만에 사라졌다.

투자자들이 우려한 것은 데이터센터 건설 속도다. 민주당 소속 당선인 가운데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 중단과 첨단 AI 개발 속도 조절을 주장한 인사들이 의회에 입성하면서 규제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경계감이 커졌다.

데이터센터 건설이 늦어지면 AI 반도체와 서버뿐 아니라 전력설비와 냉각장치,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도 함께 줄어들 수 있다. UBS는 건설 중단 등의 여파로 2028년 미국에 추가될 것으로 예상됐던 데이터센터 용량 가운데 약 30%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금리 속에서 천문학적인 AI 투자비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의문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최근 대형 기술기업들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 등 외부 차입을 늘리고 있다. 높은 조달비용이 장기화하면서 투자 대비 수익성에 대한 시장의 눈높이가 한층 엄격해졌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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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도세는 AI 반도체주에 집중됐다. 엔비디아는 9.3% 급락해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4000억달러 넘게 줄었다. AMD는 17.3%, 마이크론은 17%, 브로드컴은 10%, 퀄컴은 9.5% 하락했다. 샌디스크와 웨스턴디지털도 각각 22%, 17% 떨어졌다.

AI 컴퓨팅 자원을 빌려주는 '네오클라우드' 업체와 데이터센터 운영사도 투매를 피하지 못했다. 코어위브와 네비우스가 두 자릿수 하락했고 데이터센터에 전력설비를 공급하는 GE버노바도 7.5% 밀렸다. AI 관련주에 집중됐던 매도세가 반도체에서 전력·산업재와 소프트웨어로 번지는 모습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는 10.8%, 스페이스X는 9.1% 떨어졌다. 머스크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지원하는 데 약 5억달러를 쓴 가운데 민주당의 승리가 두 회사에 대한 규제와 정치적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두 회사가 본사를 둔 텍사스에서도 민주당이 주지사와 상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했다.

급락 과정에서는 헤지펀드가 위험 노출을 줄이기 위해 보유 주식을 한꺼번에 정리하는 '디그로싱'도 나타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급락장에서 저가 매수에 나서던 투자자들마저 현금을 확보하면서 낙폭이 빠르게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모든 종목이 하락한 것은 아니다. 모바일 광고업체 앱러빈은 시장 예상을 웃돈 실적과 자사주 매입 확대 발표에 31% 급등했다. 코치와 케이트스페이드 등을 보유한 태피스트리도 실적 전망을 높이면서 7.1% 상승했다. 다만 일부 기업의 호재로 AI주 투매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식시장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안전자산으로 이동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날 4.90%에서 장중 4.84%까지 하락했다. 채권 금리와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 반면 이란 전쟁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재부각되면서 브렌트유는 3.9% 상승했다.

테드 파크힐 인클라인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시장은 AI의 '약속'에서 AI의 '가격'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AI가 장기적으로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모든 AI 관련주의 현재 가격이 적정하다는 뜻은 아니다. 상당한 변동성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