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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고 50도로 치솟았다"…유럽 덮친 해킹에 미국도 비상
슈퍼마켓 넘어 혈액·의약품까지 '콜드체인' 위협
인터넷 연결된 낡은 제어장치 노려…"대비해야"
인터넷 연결된 낡은 제어장치 노려…"대비해야"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보안·인프라보안국(CISA), 보건·교통·농업 관련 부처는 산업용 냉장·냉동 및 온도 감시 시스템을 보호하라는 공동 경보를 발표했다.
미 정부는 해커들이 슈퍼마켓과 물류창고 등에 설치된 인터넷 연결형 온도조절장치의 보안 취약점을 노리고 있다고 밝혔다. 공격에 성공하면 냉동고 온도를 바꾸거나 해동 장치를 계속 가동해 식품을 상하게 만들 수 있다. 과열에 따른 화재 위험과 설비 손상도 우려된다.
크리스 부테라 CISA 사이버보안 담당 부국장 직무대행은 "냉장·냉동 및 온도 감시 시스템에 의존하는 모든 조직은 자신들이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FBI도 식품뿐 아니라 의료·운송·화학 등 세계 주요 기반시설에서 관련 시스템이 공격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 정부가 경보 수위를 높인 것은 유럽에서 냉장·냉동시설을 겨냥한 공격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지난달 11∼12일 프랑스에서는 해커가 수백개 슈퍼마켓의 냉동고와 저온창고를 원격 조작했다.
일부 시설에서는 해동 온도가 50도까지 올라가고 해동 시간도 1시간에서 8시간으로 연장됐다. 경보가 늦게 울리도록 설정해 피해를 키우려 한 정황이다. 노르망디의 한 매장에서는 내부 온도가 80도까지 오르면서 일부 설비가 녹았고, 다른 매장에서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기도 했다.
피해 업체들은 냉장 유통망이 끊긴 식품을 대량 폐기했다. 한 슈퍼마켓은 매입가 기준 2만1000유로어치의 상품을 버렸다고 밝혔다. 프랑스 전역의 정확한 피해액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현지에서는 수백만∼수천만유로에 이를 수 있다는 추산이 나왔다.
이달 2일에는 공격 범위가 유럽 최소 8개국으로 확대됐다. 스웨덴과 벨기에, 아일랜드,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의 슈퍼마켓 100곳 이상이 냉장·냉동설비 이상을 겪었다. 스웨덴 유통업체 ICA에서는 피해를 본 23개 매장의 장비가 본사 관리망 밖에서 인터넷에 연결돼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벨기에에서는 델하이즈 매장 수십곳과 까르푸 매장 15곳 등이 피해를 봤다. 아일랜드 슈퍼밸루도 전체 223개 매장 가운데 13곳에서 냉장·냉동식품 판매를 중단했다. 프랑스 혈액관리기관 산하 시설 3곳에서도 냉장설비 설정값이 비정상적으로 변경되는 일이 발생했다. 다만 슈퍼마켓 공격과의 연관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지난 8월 미군 기지 내 식료품점 여러 곳에서 냉장·냉동설비가 갑자기 해동 또는 가열 모드로 바뀌는 오작동이 발생했다. 미 국방부 감찰관 등이 사이버 공격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으나 유럽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공격은 복잡한 신기술보다 보안 지원이 끝난 낡은 장비와 알려진 취약점을 파고든 것으로 분석됐다. 프랑스에서 피해를 본 설비 상당수에는 덴마크 업체 댄포스의 구형 제어장치가 사용됐다. 댄포스는 지원이 종료된 제품을 교체하고 최신 보안 업데이트를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냉장·냉동 제어장치를 공개 인터넷에서 분리하고 기업 내부 업무망과도 격리하라고 권고했다. 불필요한 원격접속을 차단하고 강력한 인증 절차와 최신 보안 업데이트를 적용할 것도 주문했다.
현재까지 공격의 배후를 자처한 조직은 없으며 범행 동기도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인터넷에 연결된 제어장치 하나가 뚫리면 슈퍼마켓 진열대부터 혈액과 의약품 보관시설까지 동시에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냉장고가 새로운 기반시설 사이버전의 표적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