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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억 쏟아 부었는데"…억만장자들 선거서 참패
머스크 6300억원 베팅, 공화 후보 핵심 경합지서 줄줄이 패배
AI·가상자산 업계도 쓴맛…데이터센터 규제 주민투표 압승
AI·가상자산 업계도 쓴맛…데이터센터 규제 주민투표 압승
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실리콘밸리 거물들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들에게 6억달러(한화 8040억원) 이상을 지원했다.
가장 많은 돈을 쓴 인물은 머스크였다. 머스크가 이번 선거에 투입한 자금은 4억7000만달러(약 6300억원)를 웃돌았다. 이는 그가 2024년 대선과 의회 선거에 쓴 것으로 알려진 약 2억9000만달러보다도 많다.
머스크는 자신의 정치활동위원회인 아메리카팩과 공화당 상·하원 선거 지원 단체를 통해 자금을 지원했다. 이 가운데 약 2억1200만달러는 텍사스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켄 팩스턴 후보를 돕는 데 투입됐다.
그러나 팩스턴 후보는 민주당 제임스 탈라리코 후보에게 12%포인트 차로 패했다. 텍사스에서는 1988년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 소속 연방 상원의원이 탄생했다. 탈라리코 당선인은 승리 연설에서 "세상의 모든 돈도 텍사스 주민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억만장자 후원자들을 겨냥했다.
머스크가 지원한 후보들은 오하이오와 미시간 등 주요 경합주에서도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워싱턴포스트 집계에 따르면 머스크가 지원한 후보 106명 가운데 최소 44명이 낙선했다. 승리한 18명은 대부분 애초 공화당의 우세가 예상됐던 지역 후보였다. 나머지 선거는 집계 당시 결과가 확정되지 않았다.
다른 기술업계 거물들의 성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벤처투자회사 앤드리슨 호로비츠 공동창업자인 마크 앤드리슨과 벤 호로비츠는 9000만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가상자산거래소 제미나이 공동창업자인 캐머런·타일러 윙클보스 형제도 500만달러 넘게 투입했다.
오픈AI 공동창업자 그레그 브록먼 부부는 친트럼프 성향 슈퍼팩인 ‘마가’와 AI 규제 완화를 주장한 ‘리딩 더 퓨처’에 각각 2500만달러를 기부했다. 리딩 더 퓨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에게 250만달러를 지원했지만 민주당 애니 앤드루스 후보가 승리했다.
가상자산업계도 쓴맛을 봤다. 친가상자산 후보를 지원하는 슈퍼팩 '페어셰이크'는 오하이오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민주당 셰러드 브라운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광고비로 5000만달러 넘게 썼다. 그러나 가상자산 규제 강화를 주장해온 브라운 후보의 의회 복귀를 막지 못했다.
기술업계의 패배는 후보 선거에 그치지 않았다. AI 데이터센터 건립을 제한하는 주민투표도 미국 곳곳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선거 결과가 확정된 47개 관련 안건 가운데 46개 지역에서 데이터센터 개발을 제한하거나 추가 규제를 도입하는 쪽이 승리했다.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용수를 소비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 9월 여론조사에서는 미국 유권자의 72%가 거주 지역에 새로운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데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지난 3월 조사보다 반대 비율이 7%포인트 높아졌다.
FT는 데이터센터 문제에 물가 상승과 이란 전쟁을 둘러싼 불만까지 겹치면서 민주당으로 향한 표심의 파도가 거액의 선거자금을 압도했다고 분석했다. 빅테크의 선거 지출을 조율했던 한 정치권 관계자는 "돈이 먹히지 않았다"며 "파도가 너무 거대해 기술업계의 후원금이 완전히 묻혔다"고 말했다.
선거 결과는 향후 기술기업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전망이다.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AI·가상자산 규제 강화와 데이터센터 건설 제한 논의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커졌다. 하원 진보파에서는 내년 AI 기업 경영진을 의회에 불러 선서 증언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머스크는 선거 당일 엑스(X)에 공화당을 상징하는 색을 언급하며 "오늘은 빨간색에 투표하라"고 독려했지만 민주당의 승리가 확실해진 뒤 해당 글을 삭제했다. 다만 4억7000만달러는 머스크의 전체 자산을 고려하면 백만장자가 400달러를 기부한 것과 비슷한 부담에 불과하다고 FT는 평가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