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 큐엠아이티 대표가 강연을 하고 있다. 큐엠아이티 제공
이상기 큐엠아이티 대표가 강연을 하고 있다. 큐엠아이티 제공
감독의 호통과 낡은 화이트보드, 그리고 지도자의 맹목적인 '감(感)'. 오랜 시간 한국 스포츠 현장을 지배해 온 낡은 관행이다. 하지만 이제 승부의 세계는 선수의 수면 패턴부터 근육 피로도까지 모든 것을 숫자로 증명하는 ‘데이터 전쟁’으로 진화했다. 이 거대한 스포츠 테크놀로지 혁명의 최전선에서 K-스포츠 생태계의 패러다임을 뒤바꾸고 있는 기업이 있다. 스포츠 인텔리전스 기업 큐엠아이티(QMIT)다.

지난달 28일 서울 문정동 플코짐 송파에서 만난 이상기 큐엠아이티 대표(39)의 이력은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IMF 외환위기 당시 전남 나주 할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까무잡잡한 피부 탓에 ‘우동 촌놈’으로 불리던 소년이었다. 축구부 회비를 내지 못해 할머니가 챙겨준 빵으로 허기를 달랬고, 대학 입시 때는 원서비 7만7000원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번외 지명으로 간신히 프로(성남 일화) 무대를 밟았지만, 연봉은 1200만원에 불과했다. 한 달 실수령액 70만원 남짓한 돈으로 생활했지만, 축구 선수라는 꿈만을 좇으며 달렸다고 한다.

상주 상무, 수원 삼성, 수원FC, 서울 이랜드 FC 등을 거쳤으나 구단의 주먹구구식 훈련과 불투명한 미래가 그를 지치게 했다. 이 대표는 “한계를 견디며 무작정 훈련하다가 치골 피로골절까지 겪었다”며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 아날로그식 시스템의 한계를 절감해 2017년 이른 은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 대표는 국내 스포츠계의 폐쇄적이고 경직된 문화에 대해 아쉬움을 강하게 나타냈다. 그는 “현장에서는 여전히 ‘축구를 어떻게 데이터로 하느냐’며 기술 도입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심지어 구단이 보유한 데이터를 선수 개인에게 투명하게 공유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기관이나 구단은 감사와 규제에 얽매여 과감한 혁신을 주저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정치적으로 얽혀 바꿀 수 없었던 비과학적인 관행을 기술의 힘으로 타파하고 싶었다”고 창업 배경을 덧붙였다.

은퇴 직후 그는 무작정 국민체육진흥공단 문을 두드렸다. 은퇴 선수 지원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보고 상담받기 위해서였다. 이를 계기로 2018년 큐엠아이티를 설립한 그는 체육공단의 창업 지원 트랙을 차근차근 밟으며 회사를 탄탄하게 키웠다. 큐엠아이티의 핵심 서비스는 선수(player)와 지도자(coach)를 잇는다는 의미의 스포츠 인텔리전스 운영체제(OS) ‘플코(PLCO)’다. 분절된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모바일 앱(데이터 통합 관리 시스템), 플코 짐(측정 기반 오프라인 트레이닝 센터), 플코 뉴트리션(영양 관리 솔루션) 등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입체적인 3각 편대를 구축했다.
이상기 큐엠아이티 대표가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큐엠아이티 제공
이상기 큐엠아이티 대표가 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큐엠아이티 제공
이 대표는 “2016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레스터 시티의 기적 같은 우승 이면에는 영양과 수면까지 통제한 체계적인 데이터 시스템이 있었다”며 “플코는 선수가 매일 앱에 입력하는 통증, 피로도, 수면 상태 등 주관적 데이터와 훈련장에서 수집된 객관적 운동 부하 데이터를 AI가 융합 분석해 부상 위험을 예측하고, 최적의 훈련 강도와 휴식 일정을 맞춤형 솔루션으로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구단에서 세밀한 피드백을 받지 못하는 선수들이 직접 ‘플코 짐’을 찾아 과학적인 측정 기반으로 경기 데이터를 리뷰하고 성장 목표를 다잡을 정도로 현장의 밀착도도 높다.

시장의 반응은 압도적인 결과로 입증되고 있다. 플코를 도입한 한 프로 구단의 부상률은 30%에서 10%로 급감했고, 경기 가용률은 75%에서 92%로 상승해 컨디션 편차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올 시즌 K리그2에서 이정효 감독과 함께 1위를 달리는 수원 삼성을 비롯해 전북 현대, 수원FC, 프로야구 SSG 랜더스 등 국내 주요 프로 구단이 플코와 함께하고 있다.

여러 종목의 프로 구단과 유소년 클럽 등 누적 1180여 개 팀, 선수 1만7500여 명이 사용하는 거대 플랫폼으로 커진 큐엠아이티는 체육공단의 ‘스포츠테크 프로젝트’를 통해 한 단계 더 도약을 준비 중이다. 이 대표는 “체육공단의 지원을 받아 구단 고유의 운영 철학을 데이터화하는 ‘팀 운영 통합 플랫폼’ 고도화 작업을 완료했다”며 “맞춤형 성장 로드맵을 설계하는 ‘선수 성장 계획(IDP)’ 솔루션을 통해 더 많은 선수의 성장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큐엠아이티의 다음 무대는 글로벌 시장이다. 일본과 인도네시아는 물론 독일, 튀르키예 구단과도 협상하고 있다. 이 대표는 “공정한 경쟁과 건강을 뜻하는 ‘WINNING THE RIGHT WAY(건강한 승리)’가 회사의 비전”이라며 “데이터를 통해 선수를 보호하고 투명하고 건강한 글로벌 스포츠 문화를 구축하겠다”고 다짐했다.

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