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현대백화점 흰디, 신세계백화점 푸빌라, 롯데홈쇼핑 벨리곰, 이마트 고래잇/사진=AI 편집
왼쪽부터 현대백화점 흰디, 신세계백화점 푸빌라, 롯데홈쇼핑 벨리곰, 이마트 고래잇/사진=AI 편집
백화점에서 태어난 강아지는 편의점 젤리가 됐다. 홈쇼핑에서 자란 분홍 곰은 쇼핑몰 이름으로까지 위상이 올라갔다. 요즘 유통 업계에서 밀고 있는 캐릭터들 얘기다. 현대백화점 '흰디'와 롯데홈쇼핑 '벨리곰'이 그 주인공이다. 자체 브랜드(PB)가 캐릭터 지식재산권(IP) 사업으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쇼핑백과 매장을 꾸미던 유통사 캐릭터가 회사 밖으로 나가 직접 돈을 벌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캐릭터 상품을 구매하고, 다른 기업이 사용권을 사들이면서 유통사도 상품을 들여다 파는 사업자에서 지식재산권(IP)을 공급하는 사업자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3일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들어(1~10월) 흰디 굿즈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73% 증가했다. 흰디의 공식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0만명을 넘어섰고, 같은 기간 콘텐츠 공유 건수는 13만건으로 전년 동기의 60배 수준으로 늘었다. 회사가 올린 콘텐츠를 소비자가 주변에 퍼뜨리는 팬덤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흰디는 2019년 독일 일러스트 작가 크리스토프 니만과 협업해 만든 흰색 강아지다. 모든 일에 끼어들기 좋아하는 엉뚱한 성격으로, '순간의 행복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젤리 모양 친구 젤핑·젤뽀·젤봉과 행복을 모으는 모험을 떠난다는 스토리도 만들어냈다.

흰디의 활동 무대는 백화점을 넘어섰다. 2024년 BGF리테일과 협업해 전국 CU에서 '흰디와 젤리씨앗단'을 판매했고, 지난해에는 유아동 플랫폼 '메가진'에 모바일 게임 3종을 출시했다. 올해 9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는 인공지능(AI)과 확장현실(XR)을 결합해 방문객이 흰디와 상호작용하는 체험 콘텐츠를 선보였다.

다른 캐릭터 팬도 끌어들였다. 대전 '꿈돌이'와 함께 내놓은 키캡 키링과 말랑이 등 일부 상품이 조기 품절되면서 판매 기간을 이달 29일까지 연장했다. 백화점 방문객에게 사은품으로 건네던 캐릭터가 소비자가 지갑을 열어 구매하는 상품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사람 놀래키던 벨리곰…해외서도 매출 올린다

롯데홈쇼핑이 2018년 개발한 벨리곰은 '놀라게 하는 곰'으로 출발했다. 유령의 집을 찾은 어린이가 흘린 풍선껌에서 태어났으며, 사람을 놀라게 하고 행복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설정. 분홍색 곰 인형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영상으로 이름을 알린 뒤 대형 전시와 상품 사업으로 확장했다.

벨리곰의 전환점은 2022년 롯데월드타워 전시였다. 초대형 벨리곰을 보러 약 325만명이 다녀갔으며 전시 기간 굿즈 매출은 목표의 약 6배인 4억1000만원을 기록했다. 영상 속 캐릭터를 현실 공간으로 옮겨 방문과 구매를 함께 끌어낸 것이다.

롯데홈쇼핑은 2024년 벨리곰의 라이선스와 굿즈 판매 등에 따른 누적 매출이 200억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굿즈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30% 증가했다. 7월에는 다이소에서 굿즈 60여종을 선보였고, 유니클로의 맞춤 제작 서비스 'UTme!'에 디자인 35종을 공급했다. 홈쇼핑 방송을 보지 않는 소비자에게도 상품을 팔 수 있는 경로를 확보한 셈이다.

해외까지 진출했다. 9개국에 선보였으며 벨리곰 사업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달했다. 특히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는 높이 7m 조형물과 현지 문화에 맞춘 포토존을 설치하고 캐릭터 상품 45종을 판매했다.

지난달 23일 문을 연 '롯데몰 벨리타운 청량리'에는 이름부터 벨리곰을 반영했다. 야외 광장에는 높이 5m 조형물을 세웠다. 홈쇼핑의 자체 캐릭터가 그룹 쇼핑몰 얼굴까지 맡게 됐다.
울시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롯데몰 벨리타운 청량리에 입장하기 위해 고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사진=롯데
울시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롯데몰 벨리타운 청량리에 입장하기 위해 고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사진=롯데

푸빌라는 앱으로…고래잇은 장바구니로

신세계그룹도 캐릭터 사업에 활발하다. 백화점과 이마트가 각기 다른 캐릭터를 내세우며 활동하는 모습이다.

신세계백화점의 '푸빌라'는 하얀 곰을 닮은 솜뭉치 캐릭터다. 2017년 네덜란드 작가 리케 반데어 포어스트와 협업해 탄생했다. 크리스마스 매장 장식과 쇼핑백으로 얼굴을 알린 뒤 비치백과 타월, 패션 협업 상품에 등장했다.

푸빌라가 맡은 역할은 고객을 앱과 점포 사이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2022년에는 대체불가토큰(NFT) 1만개를 판매하면서 등급별 백화점 이용 혜택을 결합했다. 올해 7월 키링 행사에서는 앱 출석 체크와 친구 초대, 오프라인 1만원 이상 구매 등을 미션으로 제시했다. 인형과 꾸미기용 아이템을 모으려면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고 매장을 찾아야 하는 구조다. 경품 상자에는 식음료 매장 할인 쿠폰도 넣었다.
푸빌라/사진=신세계백화점
푸빌라/사진=신세계백화점
이마트의 '고래잇'은 가격 경쟁력을 전달한다. 이마트를 상징하는 알파벳 'e'의 방향을 돌려 만든 노란 고래로, 민트색 친구 '불가사릿'과 함께 가격 거품을 삼키고 할인 상품을 찾아낸다는 설정이다. 이름에는 '그레이트(Great)'라는 뜻도 담았다.

이마트는 2025년부터 대형 할인 행사를 '고래잇 페스타', 가격과 품질을 강조한 상품을 '고래잇템'으로 묶었다. 품목과 할인율이 바뀌어도 캐릭터는 남는다. 소비자가 노란 고래를 보고 이마트의 할인 행사를 떠올리도록 만든 것이다.

지난해 고래잇 페스타는 총 10회 열렸고 누적 참여 고객은 약 2300만명이었다. 일부 행사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최대 82%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도 행사 매출과 고객 수가 각각 3.5%, 6.0% 늘었다. 캐릭터의 사용권이나 굿즈에서 발생한 수익은 아니지만, '고래잇'이라는 이름을 알리며 이마트의 간판 행사로 자리매김했다는 반응이다.

유통사가 자체 캐릭터를 키우는 이유는 명확하다. 외부 인기 캐릭터에 사용료를 내는 대신 자신이 보유한 IP를 상품과 공간에 반복 활용하고 다른 기업에 공급할 수 있어서다. 매장과 앱이라는 홍보·판매망도 이미 갖췄다. 벨리곰은 외부 판매와 라이선스로, 흰디는 굿즈와 협업으로, 푸빌라와 고래잇은 본업의 고객 참여와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이 자산을 활용하고 있다.
울시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롯데몰 벨리타운 청량리에 입장하기 위해 고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사진=롯데
울시 동대문구 전농동에 위치한 롯데몰 벨리타운 청량리에 입장하기 위해 고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사진=롯데

더불어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기용하면 감당해야 하는 사건, 사고, 논란 등의 리스크도 피할 수 있다.

소현진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요즘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높고, 지자체에서도 자체 캐릭터를 내세우는 시대 아니냐"며 "캐릭터를 키우면 그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오프라인 공간에 모을 수 있는 모객 효과를 얻을 수 있고,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는 것에서 나아가 수익 상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