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 체스터필드의 한 야적장. /링거펠트 홈페이지 캡처
미국 버지니아주 체스터필드의 한 야적장. /링거펠트 홈페이지 캡처
인공지능(AI) 열풍이 미국 산업용 부동산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문을 닫은 발전소와 제련소는 기존 전력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센터 부지로 주목받으면서다. 건설에 필요한 자재와 장비를 보관하기 위해 야적장에도 자금이 유입된다. AI 인프라 확대로 과거 주목받지 못했던 산업용 토지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력 인프라 갖춘 폐공업시설 주목

2일 글로벌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야적장과 폐발전소 등 기존 산업용 부지가 AI 인프라 확대에 따른 새로운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CBRE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야외 저장시설(IOS) 임대료는 2021년 이후 32% 상승했다. 부동산 서비스업체 콜리어스의 ‘2026 데이터센터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일부 지역에서 전력 확보 및 개발 인허가 여건을 갖춘 데이터센터 부지는 일반 산업 용지보다 2~4배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가동을 멈춘 발전소와 제련소가 대표적이다. 데이터센터 개발업체 앨러게니DC프로퍼티는 지난해 11월 약 19만㎡ 규모의 옛 석탄발전소 부지를 1430만달러(약 191억원)에 매입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스프링데일에 있는 체스윅 발전소로, 2022년 문을 닫았다. 개발업체는 이곳에 최대 240메가와트(㎿)의 IT(정보기술) 전력 용량을 갖춘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계획이다.

2022년 생산을 중단한 켄터키주 호스빌의 알루미늄 제련소는 AI 기업 앤트로픽이 사용할 데이터센터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AI 데이터센터 개발업체 테라울프는 지난 2월 현금 2억달러와 개발법인 지분 6.8%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곳 부지와 기반 시설을 인수했다. 지분 평가액과 거래비용을 포함한 총 인수원가는 약 3억190만달러에 달한다. 지난 7월에는 앤트로픽과 401㎿의 IT 로드에 대한 20년 임대계약을 체결했다.

폐발전소·제련소가 갖춘 기존 전력 인프라가 데이터센터 개발에 유리한 조건으로 재평가됐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데이터 분석업체 알투스그룹은 상대적으로 전력 공급 제약이 적은 지역에서도 데이터센터 개발을 위한 전력회사와의 계통 연결 협의에 18~36개월이 걸린다고 분석했다. 가동을 중단한 발전소와 제련소는 과거 대량의 전력을 생산하거나 소비하던 곳이어서 기존 송전망 등 전력 인프라에 접근하기 유리할 수 있다.

미국에서 전력망 인허가 지연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력은 더 높아진다. 미국 에너지시스템통합그룹(ESIG)이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송전망의 계획 및 인허가, 건설에는 통상 5~10년이 걸린다. 미국 에너지부 역시 신규 송전선로의 연방 인허가 절차에 평균 약 4년이 소요된다고 밝힌 바 있다.

◇신흥 투자처 떠오른 야적장

건설 장비와 자재를 쌓아두는 야적장에도 대형 투자자가 몰려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사 브룩필드는 지난 5월 산업용 야적장 등에 투자하는 피크스톤리얼티트러스트를 약 12억달러에 인수했다. JP모건자산운용과 제니스IOS는 지난 4월 기준 미국 33개 시장에서 야적장 약 100개 규모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버지니아주 체스터필드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을 지원하는 야적장이 기관투자가에 매각됐다. 부동산 개발업체 링거펠트는 데이터센터 관련 산업 설비 운송·보관업체인 A&A트랜스퍼를 위해 지난해 말 약 4만㎡ 규모의 야적장을 조성했다. 이후 지난 5월 기존 물류창고와 야적장을 매뉴라이프자산운용에 매각했다.

하지만 야적장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 대부분 지역에서 새로운 토지를 IOS 용도로 허가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 같은 시설이 소음을 유발하고 미관상 좋지 않기 때문에 지방 정부와 주민들이 선호하지 않아서다. CBRE도 용도지역 규제가 신규 공급을 제약하는 핵심 요소라고 지적했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쓸 야적장은 더욱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야적장이 데이터센터 부지로 전환되는 사례가 나오면서다. WSJ에 따르면 버지니아주 매너서스에서는 약 81만㎡의 야적장이 데이터센터 부지로 바뀔 예정이다. 지역 내 야적장의 20%를 넘어서는 규모다.

손주형 기자 handb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