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GS25 매장의 '카페25' 컵홀더에 실린 '들꽃'. /사진=박상경 기자
전국 GS25 매장의 '카페25' 컵홀더에 실린 '들꽃'. /사진=박상경 기자
"처음에는 사실 '볼 사람은 보고, 안 볼 사람은 안 보겠지' 하고 욕먹을 각오로 올렸어요. 워낙 잘 그리는 분들이 많다 보니까요. 확실한 제 방향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던 거죠."

경기 양평에서 GS25 편의점을 운영하는 가맹 경영주 최종원 씨는 인스타그램에 처음 작업을 공개했을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털어놨다. 낮에는 편의점 계산대를 지키고 밤에는 캔버스 앞에 앉아 붓을 잡는 그의 일상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알려지며 잔잔한 화제를 모았다.

이러한 사연에 주목한 편의점 GS25는 가맹 경영주와 고객 등 다양한 이들의 삶의 궤적을 담아내는 '포 드리머스(For Dreamer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번 협업을 기획했다. 그의 대표작인 '들꽃'과 '설강화'를 담은 한정판 '카페25' 컵홀더를 전국 GS25 매장에서 선보이고 있다.

점장과 화가를 오가는 루틴

대표작인 '들꽃' 카페25 컵홀더. /사진=박상경 기자
대표작인 '들꽃' 카페25 컵홀더. /사진=박상경 기자
"원래는 어머니가 마트를 하셨어요. 그런데 주변 환경이 계속 바뀌다 보니까 개인 마트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안정적으로 운영을 해보려고 편의점으로 전환하게 됐죠."

그렇게 직접 매장을 맡아 뛰어든 지 어느덧 4년째. 그의 하루는 철저하게 계산된 시간표로 움직인다.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매장 오픈과 발주, 청소를 마치고 나면 체력 유지를 위해 낮잠을 잔다. 이후 마감 근무를 소화하고 오후 11시가 돼서야 작업실로 향한다.

"처음에는 무리하게 잠을 줄여가며 작업하다가 몸이 크게 상하기도 했어요. 그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지금의 루틴을 찾았죠."

작업실에만 머물지 않고 야외 사생 모임에 나가거나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그에게는 중요한 창작의 자양분이다. 수십 년 경력의 전문 작가들 사이에서 '내가 이 사이에 껴도 되는가' 하는 조바심이 들 때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부딪치며 많은 것을 체득해 나간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맹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좇기보다 자신만의 속도를 지키는 데 집중한다고 귀띔했다. 캔버스 앞에 갇혀 있을 때 오는 신체적 답답함을 풀기 위해 4년째 락킹을 배우고 실제 댄스 배틀 무대에도 오르는 등 다방면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며 균형을 잡으려 하고 있다.

영화 한 편에서 시작된 그림

사진=박상경 기자
사진=박상경 기자
최 씨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접한 영화 한 편이었다. 남들에게 스스로의 진심이나 속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답답함을 느꼈던 그는 영화 '계춘할망' 속 미술 작품 '고백'을 보며 묘한 울림을 받았다.

"내 마음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는 그날 바로 펜을 들었다. 이후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이때 배운 디자인 감각은 SNS에 작업물을 올리거나 작품을 시각적으로 다듬는 데에도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다.

최 씨는 편의점을 운영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마른 뒤 빛을 받으면 반짝이는 유화의 매력, 잡생각을 잊고 몰입할 수 있는 즐거움은 그가 작업에 빠져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작업실 한쪽에는 인물을 연습한 흔적이, 또 다른 한쪽에는 모네의 작품을 따라 그린 습작이 눈에 띈다. 그는 "모네를 워낙 좋아해서 파리에서 관련한 전시를 하루종일 보고 오기도 했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국내에서는 유화로 꽃을 주로 그려온 김금안 작가를 존경한다고 했다.

'들꽃'과 '설강화'가 건네는 위로

그림 '설강화'(오른쪽). 왼쪽 그림은 사생 대회에서 그린 작품으로, 최 작가는
그림 '설강화'(오른쪽). 왼쪽 그림은 사생 대회에서 그린 작품으로, 최 작가는 "예상 외로 좋은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사진=박상경 기자
전국 GS25 매장의 '카페25' 컵홀더에 실린 대표작 '들꽃'과 '설강화'는 그가 일상 속에서 건져 올린 두 가지 결의 작품이다. 첫 작품 '들꽃'은 주변에서 흔히 마주하는 들꽃의 풍경을 담아낸 것으로, 처음 붓을 잡았을 때의 벅찬 재미에 이끌려 잠도 줄여가며 2주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설강화'는 또 다른 의미로 각별하다. 추운 겨울 끝에 피어나는 생명력을 담아낸 이 작품은, 처음 SNS에 작업을 공개했을 때 한 누리꾼으로부터 자신의 20대를 온전히 위로받았다는 장문의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제 그림을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진짜 위로가 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들이 찾아왔어요."

가끔은 '평이한 그림' 같다는 평도 받지만 그는 "지금 내 실력에 맞는 최선"이라며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는다고 덧붙였다.

"편의점에 카페 겸 화실 차리고 싶다"

컵홀더 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그는 멋쩍은 웃음과 함께 손님과의 일화를 꺼냈다.

"제가 손님께 이 컵홀더를 제가 그린 거라고 직접 말하진 않죠(웃음). 그런데 어느 날은 손님이 컵홀더 뒤쪽 글귀를 가만히 읽더니 일행한테 ‘위로받는 기분’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제가 만든 건 줄은 당연히 모르셨겠지만, 그때 그 말을 듣는데 저한테 오히려 더 큰 위로가 됐어요."

최 씨는 이번 협업으로 발생한 저작권료 전액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기부한다. 기부금은 소아암 환아들의 미술교육 지원에 쓰일 예정. 아픔이나 환경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작은 숨통이자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다.

그는 앞으로도 편의점 운영을 묵묵히 이어가면서 편의점 위층에 누구나 편하게 와서 그림을 배우고 어른과 아이가 어우러져 교감할 수 있는 '카페 겸 화실'을 차리는 것을 꿈꾼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매개로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아직은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는 건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림 그리는 게 좋고, 이렇게 천천히 저를 알아가면서 나아가고 싶어요."

박상경 한경닷컴 기자 highse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