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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들의 칩 설계자, 브로드컴[박신영의 월가 아나토미]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2일9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AI 산업의 무분별한 투자를 경고하면서 AI 거품 논란에 불을 지폈습니다. 하지만 브로드컴은 26일(현지시간) 오히려 앤트로픽의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630억달러 규모의 금융조달을 직접 성사시키며 AI 산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픈AI를 위한 추가 금융지원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AI 투자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브로드컴은 고객의 투자 자금을 확보하고 반도체 주문을 실제 매출로 연결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엔비디아와 함께 AI 핵심 반도체 기업으로
브로드컴은 엔비디아와 함께 AI 시대의 핵심 반도체 기업으로 꼽힙니다. 엔비디아가 범용 GPU에 강점이 있다면, 브로드컴은 구글과 오픈AI 등의 맞춤형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기술에 강점이 있습니다.
브로드컴의 뿌리는 HP 반도체 사업부에서 출발한 아바고 테크놀로지스와 1991년 설립된 원조 브로드컴입니다. 아바고가 2016년 브로드컴을 약 370억달러에 인수하면서 현재의 브로드컴이 탄생했습니다.
이후 브로케이드, CA테크놀로지스, 시만텍 기업용 보안 사업, VMware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이 같은 성장 전략을 이끈 인물이 말레이시아 출신의 혹 탄 CEO입니다. MIT와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2006년 아바고 CEO에 취임했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자체 기술과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중심으로 회사를 키웠다면, 혹 탄은 인수합병과 사업 재편을 통해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기업을 만들어냈습니다.
브로드컴은 반도체 설계에 집중하고 실제 생산은 TSMC 등에 맡기는 팹리스 기업입니다.
맞춤형 AI 반도체로 경쟁력
브로드컴의 가장 큰 경쟁력은 맞춤형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기술을 함께 공급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글의 TPU입니다. 브로드컴은 구글과 10년 넘게 TPU를 공동 개발하면서 AI 연산장치와 메모리, 데이터 전송 구조를 고객의 요구에 맞게 설계하는 경험을 축적했습니다.
엔비디아 GPU가 다양한 AI 작업에 활용되는 범용 반도체라면, 브로드컴의 ASIC은 특정 고객의 AI 연산에 최적화한 반도체입니다. 대규모 작업에서 전력 소모와 연산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도체 사이에서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도록 하는 SerDes 기술도 강점입니다. 브로드컴은 HBM과 연산 칩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첨단 패키징 기술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브로드컴은 AI 가속기뿐 아니라 이더넷 스위치와 광통신 기술도 공급합니다. 대표 제품인 토마호크 6는 102.4Tbps급 데이터 전송 능력을 갖췄습니다.
혹 탄 CEO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개발 속도와 양산 능력입니다. 최첨단 반도체는 시험 생산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설계와 제작을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발생합니다.
브로드컴은 초기 설계를 큰 수정 없이 실제 생산으로 연결하는 경험을 축적해 이러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픈AI와 공동 개발한 맞춤형 AI 가속기 '할라페뇨'는 초기 설계부터 테이프아웃까지 약 9개월이 걸렸다고 발표했습니다.
AI 반도체가 매출 성장 주도
브로드컴의 2025회계연도 전체 매출은 약 639억달러였습니다. 반도체 솔루션이 369억달러로 58%, 인프라 소프트웨어가 270억달러로 42%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AI 반도체 사업이 급성장하면서 매출 구조가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2026회계연도 3분기 전체 매출은 295억91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6% 증가했습니다. 반도체 솔루션 매출은 208억3900만달러로 127% 늘었고, 인프라 소프트웨어 매출은 87억5200만달러로 29% 증가했습니다.
전체 매출에서 반도체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0%까지 높아졌습니다.
특히 AI 반도체 매출은 167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21% 급증했습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도 54% 늘어나 전체 매출의 약 56%를 차지했습니다.
혹 탄 CEO는 4분기 AI 반도체 매출이 217억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현금 창출 능력도 브로드컴의 강점입니다. 3분기 잉여현금흐름은 136억6500만달러로 매출의 약 46%에 달했습니다.
AI 반도체의 고성장에 VMware를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 사업의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더해지면서 실적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구글·앤트로픽·오픈AI·메타가 고객
브로드컴은 2026회계연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맞춤형 AI 가속기인 XPU 고객이 6곳이라고 밝혔습니다.
가장 오래된 파트너는 구글입니다. 브로드컴은 구글과 10년 넘게 TPU를 공동 개발해 왔으며, 반도체 설계와 고속 데이터 전송, 첨단 패키징 기술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고객은 앤트로픽입니다. 앤트로픽은 구글 TPU를 활용해 클로드를 학습시키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브로드컴은 앤트로픽이 2027년 5GW, 2028년 추가로 10GW의 TPU 연산 용량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혹 탄 CEO는 앤트로픽이 2027년 브로드컴의 최대 XPU 고객이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오픈AI와도 자체 AI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고 있습니다. 오픈AI는 엔비디아 GPU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2025년 10월 브로드컴과 최대 10GW 규모의 협력을 발표했습니다.
2027년 1.3GW, 2028년에는 5GW 이상의 반도체 공급이 예상됩니다.
메타 역시 브로드컴과 2나노 공정 기반의 자체 AI 반도체 MTIA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2029년까지 여러 세대의 제품을 공동 개발할 계획이며 초기 공급 규모는 1GW 이상입니다.
바이트댄스와 후지쓰도 브로드컴의 맞춤형 반도체 사업과 관련해 거론되고 있지만, 공식 발표된 6개 XPU 고객에 포함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혹 탄 “AI 투자는 카지노 도박”
혹 탄 CEO는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DBS은행의 아시아 퓨처 포워드 콘퍼런스에서 AI 산업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자본 부족을 지목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AI 산업은 웨이퍼와 메모리, 전력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생산능력이 확대되면서 이러한 공급 부족은 점차 해소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반면 앞으로는 AI 기업들이 막대한 데이터센터 투자에 필요한 돈을 계속 조달할 수 있을지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AI 투자자들의 과도한 기대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많은 투자자가 자신이 투자하는 AI 기업의 사업모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지나치게 높은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며 이러한 투자 행태를 카지노 도박에 비유했습니다.
당시 오픈AI의 연환산 매출은 약 5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상당한 성장 속도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이보다 더 높은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혹 탄은 오픈AI와 앤트로픽이 실제로 상당한 매출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매출 증가가 반드시 이익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AI 모델을 개발하고 학습시키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일반 기업들의 AI 도입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기업들이 생성형 AI에 막대한 돈을 쓰고 있지만 실제 생산성이 얼마나 높아졌고 투자한 비용만큼 수익을 거두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부모에게 받은 돈으로 오락실 게임을 즐기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어린아이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AI 반도체 수요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AI 연산 인프라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상황이 2029년 또는 2030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이 같은 경고 이후 AI 투자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반도체주에 매도세가 나타났습니다.
10월 13일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약 2.7% 하락했고, 이후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AMD 등 주요 반도체주도 약세를 보였습니다. 코어위브와 오라클 같은 AI 인프라 기업들의 낙폭은 더 컸습니다.
앤트로픽 630억달러 조달, 순환거래 논란
브로드컴은 26일 뱅크오브아메리카, 블랙스톤, 씨티그룹, 모건스탠리와 함께 앤트로픽의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630억달러 규모의 금융조달 계약을 발표했습니다.이번 거래는 특수목적법인인 SPV가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해 브로드컴의 맞춤형 AI 반도체와 네트워크 장비를 구매한 뒤 앤트로픽에 임대하는 구조입니다.
앤트로픽은 처음부터 막대한 장비 구매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장기간 임대료를 납부하면서 AI 연산 능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씨티그룹, 모건스탠리가 선순위 금융조달을 주선하고 블랙스톤은 후순위 금융조달의 일부를 담당합니다. 브로드컴은 장비의 잔존가치에 대한 지원을 제공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번 거래는 일부 은행들이 참여를 재검토하면서 무산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AI 투자 위험에 비해 대출 수익률이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러자 혹 탄 CEO가 주말 동안 은행 고위 경영진과 직접 협상해 대출 조건을 조정하고 금융기관의 손실 방어 장치를 강화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AI 산업의 가장 큰 위험으로 자본 부족을 지목했던 혹 탄이 직접 대규모 자금 조달을 성사시킨 것입니다.
브로드컴은 오픈AI의 자체 AI 반도체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500억달러 이상의 추가 금융조달도 추진하는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반도체 기업이 제품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이 제품을 구매할 자금까지 확보하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거래는 AI 산업의 순환적인 자금 흐름에 대한 우려도 키우고 있습니다.
금융기관이 AI 기업의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고, AI 기업은 확보한 자금으로 반도체를 구매합니다. 반도체 기업은 매출이 늘어나고 AI 기업은 연산 능력을 확대할 수 있지만, 결국 이 구조가 지속되려면 AI 서비스에서 충분한 현금이 창출돼야 합니다.
금융지원으로 발생한 장비 구매 매출과 최종 고객이 실제로 지불하는 AI 서비스 매출을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DA데이비슨, 목표주가 400달러
DA데이비슨의 길 루리아 애널리스트는 브로드컴의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매수'로 상향하고 목표주가를 350달러에서 400달러로 높였습니다.26일 종가 329.17달러 대비 약 21.5%의 상승 여력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핵심 근거는 앤트로픽과 오픈AI의 IPO입니다. 두 기업이 상장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면 브로드컴의 AI 반도체 매출 전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혹 탄 CEO는 2027회계연도 AI 매출을 1150억달러, 2028회계연도에는 2300억달러로 전망했습니다.
루리아는 브로드컴이 2027년 예상 주당순이익의 약 16배에 거래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습니다. 다른 AI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약 20~40배의 밸류에이션을 인정받는 것과 비교하면 저평가돼 있다는 분석입니다.
레이먼드제임스, 앤트로픽 최대 고객 전망
레이먼드제임스의 사이먼 레오폴드 애널리스트는 앤트로픽이 2027년 브로드컴의 최대 맞춤형 AI 반도체 고객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앤트로픽은 2027년 TPU8i 5GW, 2028년 추가로 10GW의 연산 용량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레오폴드는 앤트로픽의 IPO 증권신고서에 공개된 장기 장비 임대 계약에 주목했습니다.
앤트로픽은 향후 5년간 약 1612억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장비 임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자 비용은 제외한 금액입니다.
앤트로픽의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 계획이 구체적인 장기 계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윌리엄블레어·울프리서치, 추가 주문 기대
윌리엄블레어의 세바스티앙 나지 애널리스트는 앤트로픽의 630억달러 금융조달 계약에 포함된 반도체 공급량이 이미 브로드컴의 2027년 출하 전망에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하지만 해당 물량은 앤트로픽 전체 장비 수요의 약 절반에 불과해 추가 금융조달과 반도체 주문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울프리서치의 크리스 카소 애널리스트도 이번 계약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동안 월가에서는 AI 기업들이 발표한 막대한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실제로 이행할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지 우려해 왔습니다.
이번 계약으로 앤트로픽의 2027년 반도체 구매 자금이 마련되면서 관련 주문이 실제 매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입니다.
트루이스트, 금융 위험 제한적
트루이스트의 윌리엄 스타인 애널리스트는 브로드컴이 앤트로픽 금융조달 계약에서 부담하는 잠재적 위험이 실제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월가에서는 브로드컴의 첫해 최대 위험 노출 규모가 약 43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손실이 발생하려면 앤트로픽이 임대료를 지급하지 못하고, 해당 TPU를 다른 고객에게 판매하거나 임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동시에 발생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트루이스트는 이번 거래와 관련된 브로드컴의 2027년 매출을 약 200억~300억달러로 추정했습니다. 다만 해당 금액은 이미 기존 실적 전망에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규모 보증이 리스크로
월가가 우려하는 부분은 브로드컴의 대규모 금융지원 부담입니다.레이먼드제임스는 브로드컴의 최대 420억달러를 보증하는 금융지원 약정에 주목했습니다. 윌리엄블레어 역시 첫해 위험 노출 규모가 최대 43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확정 손실이 아니라 금융계약에 따른 잠재적 위험 노출을 의미합니다.
AI 기업들의 자금 조달 불확실성도 변수입니다. DA데이비슨은 앤트로픽과 오픈AI의 IPO가 지연되거나 예상보다 적은 자금을 조달하면 브로드컴의 매출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신용 위험에 대한 경고도 나왔습니다. 무디스는 AI 인프라 금융거래가 반복되면 브로드컴의 재무적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고객 집중 위험도 있습니다. 브로드컴의 맞춤형 AI 반도체 매출은 구글과 앤트로픽, 오픈AI, 메타 등 소수 대형 고객의 투자 계획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주요 고객이 데이터센터 투자를 줄이거나 자체 반도체 개발 전략을 변경하면 브로드컴의 주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