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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들라크루아 그림 속 '죽음의 제비뽑기'
난파한 배에서 식량이 없을 때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도 될까
정인국 변호사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도 될까
정인국 변호사
어느 선박이 타인의 피조개 양식장 앞 바다에 정박한 상태에서 갑자기 강력한 태풍을 만났다. 선장은 배가 뒤집히는 것을 막기 위해 닻줄을 길게 풀었다. 풀린 닻줄이 요동치면서 피조개 양식장이 큰 피해를 봤다.
양식장이 망가질 것을 알면서도 닻줄을 푼 선장은 재물손괴죄로 기소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선박이 전복되면 발생할 것이 분명한, 선원들의 생명 피해를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고 봐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적용한 법리를 형법상 ‘긴급피난’이라고 한다.
논의를 좀 더 넓혀보겠다.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을까.
프랑스 낭만주의 거장 들라크루아의 1840년 작품 ‘돈주앙호의 파선’이라는 그림을 생각해보자. 난파한 배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좁디좁은 구명선에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상황이 무언가 묘하다. 가운데 있는 사람은 모자를 거꾸로 들고 있고, 왼쪽에서 머리를 만지고 있는 사람은 팔을 뻗어 모자에 손을 집어넣고 있다. 이 장면은 식량과 물이 모두 떨어져 극한의 상황에 몰린 생존자들이, 누가 희생돼 다른 사람의 먹이가 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종이쪽지로 ‘죽음의 제비뽑기’를 하는 비극적인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 나온 내용과 비슷한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 역시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이라는 작품의 주제다. 1816년 프랑스 해군 전함 메두사호가 세네갈로 가던 중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좌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식량과 물이 부족해지자 뗏목에서는 폭동, 살인 그리고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는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다. 13일 뒤 뗏목이 다른 배에 의해 구조됐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147명 중 15명뿐이었다. 생존자들은 당시 프랑스 정부의 부정부패가 만든 희생양이라고 봐서 오히려 동정받는 분위기였다.
19세기까지 세계 선원들 사이에는 배가 난파돼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생존자 중 일부를 희생시켜 그 인육을 먹고 살아남는 행위가 일종의 관습법처럼 통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1884년 5월 영국 요트 미뇨넷호는 호주로 가기 위해 사우샘프턴 항구를 출발했다. 항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7월 5일, 남대서양 공해상에서 배가 거대한 파도를 맞고 난파됐다. 4명의 선원은 탈수 증상을 겪는 고아 소년 파커를 희생시켰다. 영국령 항구에 도착한 선원들은 이른바 ‘바다의 관습’에 따라 당연히 면책될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행위를 숨김없이 경찰에 밝혔다. 하지만 영국 정부와 법원 생각은 달랐다.
영국 대법원은 극한의 조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인명 살해나 긴급피난의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비뽑기로 인육을 먹는 바다의 관습은 공식적으로는 종식됐다.
미뇨넷호 사건 같은 경우가 완전히 발생 불가능하다고 할 것은 아니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는 우주를 항행하다가 통신이 두절된 상태에서 조난당하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구조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다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추후에 극적으로 발견됐을 때 다른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있을까. 여전히 답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