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인천글로벌캠퍼스(IGC)내 미인가 국제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 위해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최영총 기자
15일 인천글로벌캠퍼스(IGC)내 미인가 국제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 위해 버스에 탑승하고 있다. 최영총 기자
지난 15일 인천 연수구 송도3동 인천글로벌캠퍼스(IGC). 외국대학의 국내 캠퍼스가 입주한 공동 캠퍼스인 이 곳에 체육 수업을 앞둔 학생들이 운동복 차림으로 버스에 올라타고 있었다. 캠퍼스 내 운동시설 이용료가 밀려 농구 수업을 외부 시설에서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국제학교의 잘 갖춰진 교육환경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었다. 건물 곳곳에는 한글과 영어로 시설 사용계약 해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곳은 미국 사립학교의 아시아 분원을 표방하며 연간 2400만~3000만원의 학비를 받는 L기관이다. 정식 학교 설립 인가를 받지 않은 미인가 국제학교로, 교육당국의 단속에 학원을 폐원한 뒤에도 운영 주체를 바꿔 학교처럼 수업을 이어왔다. 최근 시설 사용료와 교직원 임금 체납, 등록금 환불 지연까지 불거지면서 학생들이 잇따라 자퇴했다. 이 기관의 이사장은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의 친누나로 확인됐다.

학원 폐원 뒤에도 수업…시설 사용료 3억원 체납

20일 교육계에 따르면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산하 기관인 인천글로벌캠퍼스운영재단은 지난 8일 L기관에 이달 30일까지 IGC 건물에서 퇴거할 것을 통보했다. L기관은 2023년 입주해 건물 3개 층을 사용하며 정원은 약 120명이다. 유명 축구선수 자녀의 재학 사실을 학생 모집에 활용하기도 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교육당국이 지난해 말부터 미인가 국제학교 단속을 강화하면서다. 인천시교육청은 지난 6월 학원으로 등록한 채 사실상 학교처럼 운영하던 L기관에 위법 사항을 고지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L기관은 7월 학원을 자진 폐원했지만 기존 법인 명의로 운영 주체를 바꿔 8월 18일 새 학기를 시작했다. 교육청은 이런 운영을 승인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미인가 국제학교가 입주한 건물 내 붙어 있는 시설 계약 해지 안내문. 최영총 기자
미인가 국제학교가 입주한 건물 내 붙어 있는 시설 계약 해지 안내문. 최영총 기자
운영재단은 시설 사용료 3억원대 체납과 반복된 시설 용도 위반을 이유로 계약 종료를 한 달 앞당겼다. 기한 내 퇴거하지 않으면 명도·손해배상 소송을 낼 방침이다. 또 퇴직 교직원들은 급여 지급이 8차례 미뤄져 체불임금이 약 7500만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일부는 공제된 4대 보험료가 납부되지 않았다며 지난달 기관 대표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학부모 피해도 이어졌다. 지난해 두 아들을 입학시켰다가 올해 6월 자퇴시킨 A씨는 등록금 3400여만원의 환불이 여섯 차례 미뤄져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했다. 두 자녀는 국내 정규 학력이 인정되지 않아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차모 이사장은 일부 학부모에게 외부 자금 확보와 한국외대 송도캠퍼스 이전 계획을 설명했지만 객관적인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외대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해당 시설 피해자들이 지난 9월 국회전자청원에 올린 청원. 화면 캡쳐.
해당 시설 피해자들이 지난 9월 국회전자청원에 올린 청원. 화면 캡쳐.
피해자들은 지난달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차 이사장이 차 위원장의 누나라는 점도 언급하며 특혜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구했다. 자녀를 L기관에 보내는 한 학부모 김모씨는 "차 이사장이 학부모 면담자리에서 차 위원장을 동생으로 언급하며 해명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차 위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누나가 맞지만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고 관여한 바도 없다"고 말했다. L기관 측은 관련 의혹에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른 미인가 학교서 옮겼다가 또 피해

미인가 학교가 폐쇄되면 학생들이 다른 미인가 시설로 옮겼다가 다시 피해를 보는 사례도 있다. L기관에는 최근 문을 닫은 경기 시흥의 미인가 국제학교에서 옮겨 온 학생 10여명이 있었다. 이 중 한 학부모는 L기관에 2200만원을 냈다가 등교 전 등록을 취소했지만 환불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국내 일반학교로 전학하려면 학력 인정과 교육과정 적응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데다 영어 교육과 해외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자녀를 입학시킨 학부모들이 기존 교육방식을 포기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식 외국인학교나 국제학교 역시 입학 자격과 정원 등에 제한이 있다.

수도권 미인가 국제교육기관 협의체인 글로벌교육연합이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6일까지 학부모 235가구를 조사한 결과, 미인가 국제학교 폐쇄 시 국내 일반학교로 전학하겠다는 응답은 7.7%에 그쳤다. 한 교육업계 관계자는 "영어 교육 열풍이 불던 2000년대부터 미인가 국제학교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경쟁도 치열해졌다"며 "한 곳이 문을 닫으면 다른 미인가 국제학교에서 적극 학생 모집에 나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인가 국제학교 전국 97곳…폐쇄명령 0건, 이행강제금도 6000만원에 불과

교육부가 뒤늦게 미인가 국제학교 단속에 나섰지만 실효성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전국 미인가·미등록 교육시설 213곳을 점검한 결과 미인가 국제학교는 97곳으로 집계됐다. 경기 39곳, 서울 33곳, 인천 11곳 등이다. 교육부는 최근 주요 시도교육청 관계자들과 회의를 열었고, 이달 중 미인가 국제학교 3차 점검에 나선다.

교육부가 지속적으로 미인가 국제학교 점검에 나서고 있지만 지금까지 폐쇄 명령을 내린 곳은 없다. 다음달 20일부터 폐쇄명령 불이행 시설에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되지만 금액은 6000만원에 불과하다.

교육계에서는 사후 단속에 치중한 감독 체계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인가 국제학교 상당수가 일반 학원으로 등록한 뒤 사실상 전일제 학교처럼 운영하지만 교육당국은 현장 점검 이후에야 위반 사실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인천시교육청과 재단 관계자들도 올 초 점검 과정에서 L기관의 운영 실태를 알게 됐다고 밝혔다.

학원 등록 단계에서 학교식 운영 여부를 검증할 장치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일반 학원에는 교습비 상한선이 적용되지만 미인가 국제학교는 연간 수천만원의 학비를 받는다. 2024년에는 인천의 또 다른 미인가 국제학교 이사장이 약 4억원의 등록금을 가로챈 혐의로 고소돼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일부 미인가 국제학교는 대안교육기관 등록을 허용하도록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은 외국 대학 진학이 주목적이거나 외국어 수업 중심인 시설의 등록을 제한한다. 교육부도 대안교육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이다. 한 교육업계 관계자는 "불법적으로 학교처럼 운영하는 학원에 대한 상시 점검과 함께 영어 교육·해외 진학 수요를 제도권에서 수용할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