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더 가까워진 러시아…일본과 관계는 '전후 최악' [도쿄나우]
일본과 러시아의 외교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러시아가 일본 기자를 간첩 혐의로 구금한 가운데 일본이 반환을 요구하는 섬에서는 중국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해 중국을 견제하려던 일본의 외교 구상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과 러시아는 지난 19일 국교 회복의 토대가 된 일소 공동선언 서명 7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악화한 양국 관계는 최근 기자 구금 사건까지 겹치며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은 지난 13일 극동 유즈노사할린스크의 호텔에서 홋카이도신문 기자를 간첩 혐의로 구금했다. 러시아는 당일 체포 영상을 공개했지만 일본에 구금 사실을 통보한 것은 15일이었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방적으로 정보를 발신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해당 기자가 간첩 활동을 했다는 러시아 측 주장을 부인했다. 일본 정부는 정보 제공과 인도적 배려를 요구하며 영사 면회와 건강 상태 확인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와 접촉하지 못한 가운데 러시아는 일본 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국법에 따라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영토 분쟁 지역에서도 중국과 손잡는 러시아

영토 문제에서도 양국의 대립은 깊어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8월 취임 후 처음으로 이투루프섬을 방문했다.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일본이 반환을 요구하는 이른바 ‘북방영토’ 가운데 하나다.

러시아는 이 섬에서 중국과의 경제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의 한 방송국은 지난 13일 중국 헤이룽장성 민관 대표단이 이투루프섬을 방문해 성게·해삼 양식 등에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러시아 측은 투자 유치와 중러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현재 상황이 정상 간 교류가 활발했던 10년 전과 대조적이라고 짚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6년 5월과 9월 러시아를 방문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푸틴 대통령을 자신의 고향인 야마구치현 나가토시로 초청했다. 당시에는 영토 협상도 진전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아베의 대러 접근에는 중국 견제라는 전략적 목적이 있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일본의 안보상 위협으로 “압도적인 군비 확장을 추진하는 중국”을 지목했다.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해 중국을 억제하는 구상은 ‘역키신저’ 전략으로 불린다. 냉전 당시 소련에 맞서기 위해 중국에 접근했던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외교를 뒤집은 방식이다.

중러밀착 고려해야…세 방향 안보 부담

그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일본의 대러 제재로 양국 외교는 사실상 중단됐다. 노즈드레프 주일 러시아 대사는 현재 관계를 ‘전후 최악’이라고 표현했다.

효도 신지 일본 방위연구소 연구간사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러 연계가 깊어졌다”며 “러시아의 대일 강경 자세는 중국에 보조를 맞추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견제를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이려던 전략이 더는 통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이라는 선택지가 좁아지면서 일본은 중국·북한·러시아의 위협에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동맹국인 미국도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 아래 동아시아에 얼마나 관여할지 불투명하다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영토 반환과 평화조약 체결에 집중해온 대러 외교의 틀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956년 일소 공동선언은 평화조약 체결 이후 하보마이 군도와 시코탄섬을 일본에 인도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히로세 요코 게이오대 교수는 “영토 문제와 평화조약 체결을 일러 관계의 중심에 계속 놓아온 것이 외교의 유연성을 제약해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중러 밀착과 미국의 대외전략 변화까지 고려해 대러 외교를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