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선 옛 성, 서류엔 남편 성"…두 이름으로 사는 日 여성들 [도쿄나우]
여성이 결혼하면 남편의 성(姓)을 따르는 일본에서 행정 서류에 결혼 전 옛 성을 쓸 수 있도록 바뀔 전망이다. 다만 주민표와 운전면허증 등은 대상에서 제외돼 결혼에 따른 이름 변경의 불편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결혼 전 성의 통칭 사용 확대’ 법안을 이번 임시국회에 제출하기 위해 최종 조율하고 있다. 결혼으로 성이 바뀐 사람이 일부 행정절차에서 결혼 후 성을 쓰지 않고 옛 성만 기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일본은 결혼할 때 부부 중 한쪽의 성을 선택해 함께 쓰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는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혼 전 성을 직장에서 사용하더라도 법적 이름과 달라 각종 계약과 금융거래 등에서 불편을 겪는 사례가 이어져 왔다.

옛 성 사용 넓히지만 주민표·면허증은 빠져

이번 법안에서는 엄격한 본인 확인이 필요한 호적 관련 서류와 주민표, 운전면허증 등이 옛 성 단독 기재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재도 여권과 운전면허증 등에 결혼 전 성을 병기할 수 있지만, 상당수 주요 은행이 옛 성을 이용한 계좌 개설과 유지를 인정하지 않는 등 혼선이 남아 있다.

자민당과 일본유신회는 지난해 10월 연립정권 합의서에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옛 성 사용에 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주요 신분증과 행정서류가 제외되면서 제도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여성계와 경제계 일각은 통칭 사용 확대보다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부부가 같은 성을 사용할지, 각자 결혼 전 성을 유지할지 선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제도가 도입돼도 같은 성을 원하는 부부는 지금처럼 하나의 성을 선택할 수 있다.

1898년 법제화된 부부동성…‘전통’ 놓고도 논쟁

선택적 부부별성제는 오랫동안 논의됐지만 보수 진영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반대론자들은 부부가 같은 성을 쓰는 제도를 일본의 전통적인 가족 형태로 보고, 성이 달라지면 가족의 일체감이 약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부동성이 법률로 의무화된 것은 근대화가 진행되던 1898년이다.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쪽에서는 이를 바꿀 수 없는 고유의 전통으로 보기 어렵고, 같은 성을 원하는 부부의 선택권도 유지되는 만큼 별성을 희망하는 부부에게까지 동성을 강제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한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일본에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을 거듭 권고해왔다. 일본 내 여론조사에서도 도입에 찬성하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례가 있지만 정치권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사회생활에서 결혼 전 성을 사용하면서도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에는 부정적인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부부가 같은 성을 쓰는 제도를 전통적인 가족 형태로 여기는 보수 지지층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자민당 안에도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있어 법안 처리까지 당내 의견 조율이 필요할 전망이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일본 정부에 부부별성 허용을 권고한 바 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