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가해자에게 접근·연락을 금지하는 긴급응급조치가 올 들어 1만 건을 넘어섰다. 조치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피해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고위험 가해자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대 최다 조치에도 위협 ‘여전’
19일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스토킹 긴급응급조치 집행은 1만1145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 제도 시행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 전체 집행 건수(7911건)보다 40.9% 많은 수치다. 집행 건수는 2022년 3403건, 2023년 4046건, 2024년 4610건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2021년 스토킹처벌법 도입과 함께 시행된 긴급응급조치는 스토킹 재발 우려가 있을 때 경찰이 가해자에게 100m 이내 접근금지(1호)와 전화·문자 등 연락금지(2호)를 명령하는 제도다. 법원의 잠정조치 전에 피해자 보호를 위해 경찰이 직권으로 내리고 법원에 사후 청구하는 조치다.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긴급응급조치 집행이 급증하고 있지만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피해자와 가족을 위협하는 범행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인천 남동경찰서는 지난 8월 30일 전 여자친구 언니에게 협박성 문자를 보낸 30대 A씨에게 긴급응급조치 1·2호를 내렸다. 그러나 A씨는 조치 이튿날 흉기를 들고 언니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린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살인예비와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다.
충남 천안의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수사관은 “긴급응급조치 위반을 경찰이 직접 발견하기는 어렵다”며 “피해자가 신고하거나 담당 수사관에게 연락하는 사례가 많고, 뒤늦게 위반 사실을 파악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신고 의존’ 넘어 실시간 감시해야
스토킹처벌법상 긴급응급조치와 가정폭력처벌법상 임시조치는 가해자에게 접근금지를 명령하는 제도일 뿐 실제 접근 여부를 감시할 수단은 없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가해자가 명령을 위반하더라도 피해자나 주변인이 신고하지 않으면 경찰이 즉각 알아채기 어려운 구조다. 송파 장모 살해 사건이 이런 피해자 보호의 공백을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장모 살해 피의자에 대한 가정폭력처벌법에 따른 임시조치는 지난달 30일 만료됐는데 경찰은 엿새 뒤인 이달 6일 재신청했다. 법원 결정은 범행이 벌어진 이후인 12일에야 나왔다.
스마트워치 역시 가해자의 접근을 사전에 차단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날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60대 여성이 전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렸다. 피해자는 신변보호를 요청해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지만 갑작스러운 공격에 긴급호출 버튼을 누르지 못했고 가족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다.
전문가들은 고위험 가해자 실시간 감시를 강화하고 위험성 평가를 통해 고위험군으로 판단된 가해자에게 긴급응급조치 단계부터 전자발찌를 부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자발찌와 피해자의 스마트워치를 연계해 가해자가 100m 이내로 접근하면 피해자와 경찰에 자동으로 경고가 전달되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피해자의 신고나 처벌 의사에 의존하지 않고 위험성에 따라 보호조치를 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관계성 범죄는 가해자와의 과거 관계 때문에 피해자가 신고나 처벌을 꺼릴 수 있어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위험성 평가를 통해 고위험군으로 판단되면 긴급응급조치와 위치추적을 병행해야 한다”며 “경찰과 법원이 신속히 협의해 전자장치 부착 여부를 결정하고, 피해자가 조치를 원하지 않더라도 위험성에 따라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영기 기자는 한국경제신문 사회부에서 사건·사고와 날씨, 사회 트렌드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는 현상과 여론을 짚어보는 [진영기의 커뮤 레이더] 연재합니다. 일상에서 발견한 이상한 현상, 억울한 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카카오톡으로 직접 제보할 수 있습니다.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https://open.kakao.com/o/s4ryKX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