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도 있는 브랜드 인스타그램 레어뷰티, Gisou 예시
감도 있는 브랜드 인스타그램 레어뷰티, Gisou 예시
그동안 인스타그램은 브랜드들이 저마다의 감도를 펼치는 경연장이었다. 포트폴리오처럼 짜여진 그리드 위에 누가 더 감각적으로 무드있는 컷들을 담아낼 지 경쟁했다. 제품만 돋보이게 할게 아니라 특색 있는 컬러감과 함께 자연스러운 라이프스타일 컷을 담아내는 게 과제였다. 그만큼 인스타그램에서 브랜드가 어떻게 '감도 있게' 보일 것인가가 마케터들의 큰 고민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변화의 기운도 감지된다. 인스타그램 계정 위에 어떤 스토리를 쌓고,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느냐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유머에 동참할 줄 아는 브랜드, 바세린

최근 가장 눈길을 끈 사례는 바세린이다. 크리에이터 Min Day Lee는 본인의 시그니처인 한국식 영어 발음으로 (예: ‘very very’를 ‘bery bery’처럼 발음) 재밌게 소통하는 크리에이터다. 그런 특징을 살려 바세린을 독특한 억양으로 “빠! 세린”이라고 소개한 영상이 알고리즘을 타고 '떡상'하자 (현재 영상당 5000만뷰 이상 조회수가 나올 정도다.) 바세린은 인스타그램 프로필의 로고를 ‘Vasline’ 에서 ‘Baseline’으로 바꿨다. 마치 글로벌 캠페인을 한날 한시에 전개하듯, 로고 변경은 바셀린 본사 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인도, 한국 등 여러 국가의 공식 소셜 계정으로 이어졌다. 한 크리에이터의 발음에서 시작된 밈을 글로벌 브랜드가 공식 채널에서 받아준 것이다.
크리에이터 Min day 의 빠세린 예시 / 출처: Minday 인스타그램
크리에이터 Min day 의 빠세린 예시 / 출처: Minday 인스타그램
브랜드의 로고는 오랫동안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자산처럼 취급됐다. 그런데 바세린은 그 원칙을 잠시 내려놓았다. 소비자들이 어떤 밈을 만들고 퍼뜨리며 즐기는지 브랜드도 보고 있다는 신호였다. 소비자가 먼저 시작한 농담을 브랜드가 재치 있게 받아치자, 오래된 클래식 브랜드가 한결 친근하고 동시대적으로 느껴졌다.

인터넷에 전설처럼 떠도는 각종 바세린 활용법을 연구진이 직접 시험하는 ‘Vaseline Verified’ 캠페인 역시 탁월한 마케팅 아이디어였다. 브랜드가 가진 역사와 전문성을 사람들이 이미 나누고 있던 이야기에 연결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발견한 사용법은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소비자의 유머에는 가볍게 응답한다. 제니를 모델로 기용하는 것에 더해, 소비자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는 방식에서도 브랜드의 젊음을 보여준다. 클래식하고 다소 진부한 바세린이 최근 젊어지는 밑바탕에는 새 모델만이 아닌 이런 여러가지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바세린 베리파이드
바세린 베리파이드
이 모습을 보면서 로에베가 2024년 공개한 유튜브 영상〈Decades of Confusion이 떠올랐다. 댄 레비와 오브리 플라자(북미의 코미디 배우)가 출연한 영상은 브랜드 이름의 철자를 맞히는 대회를 코미디로 풀어낸다. 시대와 옷차림이 바뀌어도 참가자들은 좀처럼 ‘LOEWE’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소비자가 브랜드 이름을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브랜드 스스로 웃음의 소재로 삼은 것이다.

바세린이 소비자가 시작한 농담에 응답했다면, 로에베는 소비자가 느끼던 어색함을 먼저 꺼내 함께 웃었다. 두 브랜드 모두 브랜드 명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만 두지 않았다. 브랜드가 자기 이름을 두고 웃을 줄 안다는 여유가, 오히려 그 이름을 더 가깝고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로에베 <Decades of Confusion> 영상 캡처
로에베 <Decades of Confusion> 영상 캡처
이렇듯 요즘 눈길을 끄는 뷰티 콘텐츠에는 사람이 있고, 사건이 있으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전개가 있다. 무엇을 파는지에 앞서 누가 만들고, 무엇에 집착하며, 사람들의 반응에 어떻게 답하는지가 보인다. 브랜드의 SNS가 진열 공간에서 대화의 공간으로 넓어지고 있다.

제품 설명보다 먼저 시작하는 스몰토크, 무무키 사례

임블리 임지현이 자신의 브랜드 무무키를 소개하는 방식에서도 이런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해외 기차 안에서 임블리가 옆에 앉아도 되겠느냐고 말을 건다. “몇 살이니?”, “나는 몇 살처럼 보이니?”라는 스몰토크로 시작한 대화는 “내 피부가 이렇게 광나는 비결을 알고 싶니?”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자신의 브랜드 제품을 꺼내 함께 발라본다. 제품 설명에 앞서 사람 사이의 호기심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영상 시리즈 중 가장 바이럴 된 영상은 9700만 뷰를 기록했고, 다른 시리즈도 잇따라 5000만 뷰를 찍으며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냈다. 최근에는 빠세린 Min Day Lee와 함께 “빠나나!”를 외치며 바나나 PDRN을 내세운 제품 광고 콘텐츠도 선보였다. 유행하는 밈을 자기 제품의 특징과 연결하는 감각, 적절한 협업 상대를 찾아 빠르게 실행하는 능력에서 1세대 인플루언서의 내공을 느꼈다.
전세계적으로 바이럴된 임블리 인스타그램 컨텐츠. / 출처: 임블리 인스타그램
전세계적으로 바이럴된 임블리 인스타그램 컨텐츠. / 출처: 임블리 인스타그램
최근 가장 핫한 바이럴 영상 주인공 둘이 만난 무무키 광고 컨텐츠. / 출처: 임블리 인스타그램
최근 가장 핫한 바이럴 영상 주인공 둘이 만난 무무키 광고 컨텐츠. / 출처: 임블리 인스타그램

논란을 밈으로 승화시킨 아이패치 게이트

최근 뷰티 업계를 달군 ‘아이패치 게이트’는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무대였다. 펜티 스킨과 글로우 레시피, 후다 뷰티가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슬라이싱 방식의 아이패치 용기를 공개하면서 독창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서로를 탓하며 방어적인 해명에 나설 수도 있었지만, 브랜드들은 이 상황을 밈으로 받아쳤다.
아이패치 게이트
아이패치 게이트
자칫 무거울 수 있었던 사안에 유머가 들어오자, 논란 자체가 함께 소비하는 콘텐츠가 됐다. 그러나 웃음을 얻는 것과 제품에 대한 신뢰를 얻는 것은 같은 일일까. 재미있는 대응은 날 선 긴장을 낮출 수 있지만, 소비자가 처음 품었던 질문까지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무엇이 새롭고, 왜 이 제품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설명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인스타그램 계정 ‘The Lipstick Lesbians’가 바이오던스 창업자의 이야기를 연결한 방식이 흥미로웠다. 바이오던스 창업자는 2025년에 해당 용기를 제안받았지만 제품의 효능과 브랜드 철학을 우선해 선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화의 중심은 ‘누가 먼저 출시했나’에서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나’로 옮겨갔다.

바이오던스는 하이드로겔 마스크를 최초로 출시한 브랜드는 아니다. 그러나 하이드로겔 마스크의 글로벌 인기를 이끈 브랜드로서, 이번에는 ‘그 용기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이야기했다. 경쟁 브랜드들이 비슷한 제품을 내놓은 이유를 설명하는 동안, 바이오던스는 왜 이것을 택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한 셈이다. 하이드로겔을 잘 아는 브랜드라는 인상을 강화하는 영리한 전개였다.

그 장면을 보며 진짜 위너가 어디인지 생각하게 됐다. 가장 많이 언급된 브랜드인가, 가장 재치 있게 대응한 브랜드인가, 아니면 소비자가 선택의 이유를 납득하게 만든 브랜드인가. 조회수와 호감, 신뢰와 구매는 서로 연결되지만 동일한 지표는 아니다.

사람의 철학을 더 먼저 들려주는 브랜드, 민새롬의 블룸

브랜드 뒤에 있는 사람의 생각을 더 길게 들려주는 콘텐츠도 있다. 민새롬이 브랜드 디렉터로 참여하는 신규 브랜드 블룸의 전개는 다른 방향에서 사람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경험과 취향을 가진 4명의 인플루언서와 함께 제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콘텐츠로 펼친다. 써니와의 대화에서는 ‘뷰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뷰티씬을 이끌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출시할지 알려주기 전에,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 그 질문에 깊이 공감했고, 그 생각이 어떤 제품으로 이어질지 기대하게 됐다. 이런 콘텐츠를 통해 소비자는 제품의 관객이면서 제작자의 고민을 따라가는 시청자가 된다. 참여자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경험이 제품의 어떤 선택을 바꾸었느냐다. 취향이 부딪히고 샘플이 수정되며, 끝내 포기한 요구의 이유까지 보일 때 개발 과정은 브랜드만의 서사가 된다.

함께 창업자의 도전을 응원하는 사람들, POV

해외에서는 창업자의 도전 자체를 함께 지켜보게 만드는 브랜드도 있다. 뷰티 크리에이터 미카일라 노게이라가 공동 창업한 POV (Point of View) 다. 올해 9월 세포라에 진출한 이 브랜드는 그 소식을 전하는 방식부터 개인의 서사와 연결했다. 미카일라는 인스타그램에서 메이크업을 준비하며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발표를 예고했다. 브랜드의 유통망 확대라는 소식이, 팔로워들이 지켜봐 온 한 사람의 다음 도전으로 전달된 것이다.

이런 방식은 지난해 브랜드 출시 때부터 드러났다. 미카일라는 결과가 어떻든 출시 당일의 모습을 촬영해 공개하겠다고 했다. 영상에는 오픈을 앞둔 긴장과 주문이 들어온 뒤의 벅찬 반응이 담겼다. 회사 측에 따르면 출시 8분 만에 매출 1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숫자만이 아니다. 성공 여부를 아직 알 수 없던 순간부터 카메라를 켜고, 그 모습을 공개하기로 했다는 '진짜 반응'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큰 팬덤을 가진 창업자이긴 하지만, 제품을 소개받는 고객에 더해, 한 사람의 도전을 지켜보고 응원하며 ‘이 사람이 만들어가는 브랜드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궁금하게 만든다.
POV 제품 사진과 창업자 이미지
POV 제품 사진과 창업자 이미지
POV 세포라 런칭일 라이브 영상 캡처
POV 세포라 런칭일 라이브 영상 캡처

감도 높은 브랜드에서 계속 팔로우 하는 브랜드로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소비자가 브랜드를 계속 지켜볼 이유를 보여준다. 소비자의 유머를 알아듣고 응답하거나, 제품을 만드는 사람의 고민을 들려주거나, 창업자의 도전을 함께 지켜보게 한다. 소비자는 제품에 관심을 갖는 데서 나아가 그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고, 도전을 응원하며, 다음 행보를 궁금해하게 된다.

물론 사람이 등장한다고 저절로 이런 관심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창업자의 얼굴을 자주 보여주거나 친근한 말투를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비자가 즐기는 농담을 이해하는 감각, 자기 제품에 대한 고집, 새로운 도전 앞에서 드러나는 긴장처럼 그 사람만의 생각과 반응이 느껴져야 한다. 사람 냄새는 화면에 얼굴이 보인다는 사실보다, 그 안에서 어떤 리얼한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가에 달려 있다.

이제 브랜드는 ‘어떻게 더 멋지게 보일까’에 더해 ‘왜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 할까’를 물어야 한다. 예쁜 사진을 보고 들어온 사람이 브랜드의 유머를 즐기고, 제품을 구경하던 사람이 창업자의 다음 도전을 기다리게 되는 것. 그렇게 관심이 이어질 때 브랜드 계정은 신제품 소식을 확인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감도 높은 피드는 브랜드의 취향을 보여준다. 그 뒤에서 어떤 사람이 무엇을 고민하고, 소비자의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게 되면 브랜드는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수많은 볼거리가 스쳐 가는 시대에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다시 찾아가는 브랜드. 그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