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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가성비가 필요한가 [권지예의 이심전심]
모든 것을 효율로 재단하는 시대
가장 값진 사랑은 어리석은 열정
권지예 소설가
가장 값진 사랑은 어리석은 열정
권지예 소설가
그중에서 내가 즐겨 시청하는 연애 프로그램에는 일정한 절차가 있어 반전의 묘미가 크다. 처음에는 첫인상으로 상대를 선택하고, 하루쯤 지나면 자기소개가 이어진다. 외모나 첫인상에 이끌려 호감을 보이다가도 자기소개가 끝나면 관계의 판도가 달라진다. 첫인상으로 시작된 설렘이 자기소개를 거치며 냉정한 현실의 저울에 올라간다. 직업과 경제력 등 상대의 조건을 비교하고 탐색하기 때문이다. 그 탐색전이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사랑에 빠지기도 전에 상대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먼저 계산하는 시대가 된 것일까.
마침 최근 출간된 <트렌드 코리아 2027>에서 ‘라이프 ROI’라는 말을 만났다. ROI는 투자수익률을 뜻하는 경제용어다. 이 책은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뿐 아니라 시간과 감정, 인간관계에까지 투자한 만큼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따지는 경향이 앞으로 더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한다. 우정도 연애도 결혼도 예외가 아니다. 그 계산법이 출산과 육아, 가족 돌봄에까지 적용된다면 인간사의 어떤 관계가 손익계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 일상에는 이미 경제학의 언어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를 ‘윈윈’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감정 소모가 심하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는 ‘손절’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라고 한다. 주식에서 손실을 줄이기 위해 쓰는 말이 어느새 인간관계의 기술이 됐다.
물론 이런 태도를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다. 우리 세대는 사랑에 값을 따지는 것 자체에도 죄의식을 느꼈다. 이게 젊은 세대의 이기심의 문제일까. 사실경제적 불안과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사랑은 낭만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어쩌면 사랑의 손익계산서는 개인의 이기심보다 우리 사회의 불안을 보여주는 증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은 본래 효율과는 거리가 먼 감정이다. 평생 자식을 낳아 키우는 부모의 사랑은 얼마나 남는 장사일까. 아픈 아이를 밤새 돌보는 부모의 시간에는 어떤 수익률을 매길 수 있을까.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고 간병하는 일도 투자 대비 효용으로만 환산한다면 선뜻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연애를 시작할 때를 떠올려 보자. 우리는 연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종일 전화기 옆에서 기다리고, 얼굴을 잠깐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가지 않았던가. 그 기다림과 설렘, 때로는 어리석은 열정이 우리의 내면을 충만하게 하고 삶을 깊이 있게 만들지 않았던가. 사랑에는 원금 보장도 없고 수익률도 정해져 있지 않다. 경제학 관점에서 보자면 이보다 불확실하고 위험한 투자가 또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바로 그런 어리석음 덕분에 인간다운 삶을 이어 왔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희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할 생각은 없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끝없이 소진하는 관계가 아름다울 리 없다. 누군가의 호의와 헌신이 다른 누군가의 당연한 권리처럼 돼서도 안 된다. 다만 사랑이란 때로 계산이 틀어질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 아니던가. 모든 것을 효율로 재단하는 시대, 어쩌면 가장 값진 사랑은 가장 가성비가 나쁜 사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