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늙지 않는다 [권지예의 이심전심]
요즘 나는 뜻밖에도 2000년도 더 된 사람들과 약속을 잡고 있다. 한 사람은 로마 철학자 세네카이고, 또 한 사람은 트로이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다. 서점에서는 세네카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극장에서는 오래된 서사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영화화한 ‘오디세이’가 1000만 관객을 넘었다. 2000년 전 로마 철학자의 사유와 2700여 년 전의 영웅 이야기에 사람들은 왜 열광할까.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는 2026년에 고전이 귀환하는 현상이 궁금했다.

나는 당장 영화 오디세이를 예매해 극장으로 갔다. 이타카의 왕이자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겪는 수난이 세 시간 가까이 숨 막히게 펼쳐졌다. 영화를 보고 귀가하니 아침에 주문한 세네카의 책 <세네카, 오늘을 빼앗기고 있는 당신에게>가 마침 도착해 있었다. 내친김에 책을 펼쳐 세 시간 만에 읽었다.

그날 나는 6시간 동안 기원전과 기원후를 오갔다. 세네카와 오디세우스 사이에도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들과 나 사이에는 다시 2000년 이상의 시간이 놓여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낯설지 않았다. 기술과 문명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는데 인간이 삶에서 부딪히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특히 ‘삶은 짧지 않다, 당신이 짧게 만들 뿐이다’라는 세네카의 명언에 공감했다. 기술 발달로 여유시간이 더 많아졌을 텐데 사람들은 시간이 없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가는 것 같다며 탄식한다. 세네카는 시간의 양보다 쓰임을 문제 삼는다. 하루하루 무언가를 처리하면서 사는 것은 시간을 그저 보내는 것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서 사는 것이야말로 내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한다. 해야 할 일에 떠밀리고 타인의 욕망과 시선에 끌려다니며 하루를 소진한다면 오래 산다고 해서 긴 삶을 산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의 이런 사유는 자신의 삶을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로 내게 납득됐다.

그에 비하면 영화 속 오디세우스의 시간은 어떤가. 그는 전쟁 10년, 귀환 10년. 인생의 20년을 써야 했다. 전쟁에 참전한 한 남자가 가족이 있는 고향집으로 돌아오기까지의 20년이라는 긴 세월이 처음엔 인간적으로 너무 막막하고 먹먹하게 느껴졌다.

영화 오디세이는 원작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다른 부분이 많다.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감독은 신들의 개입을 덜어내 신화적인 요소보다 주인공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켰다. 지략이 뛰어나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의 모습보다 전쟁 중 수많은 부하의 목숨을 잃게 하고 방화, 살인, 약탈, 신성 모독 등을 저지른 한 인간의 고뇌와 속죄와 참회를 보여준다.

원작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왕위를 찾지만, 영화에서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아내와 함께 서쪽 땅으로 떠난다. 그의 손에 죽거나 그를 위해 희생당한 수많은 망자의 영혼을 평생 애도하기 위해서. 신들의 신탁에 굴복한 영웅이 아니라 운명이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도 묵묵히 자기 갈 길로 발걸음을 내딛는 오디세우스. 그의 20년은 고통과 방랑 속에서도 끝내 자기 삶을 살아낸 한 인간의 시간이었다. 온전하고 충만한 진짜 삶. 그것이 1000만 관객과 통한 게 아닐까.

2026년 9월 어느 날, 내 하루의 6시간. 세네카의 하루.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20년. 나는 수천 년의 간격을 넘어 고전과 통했다. 고전이 오래됐으면서도 늙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