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치료제 없거나 규제로 묶여
알츠하이머 진행 늦추는 약물 투여
뇌세포 등 재생 위해 年 2만명 방문
日 알선업체 150~200곳 유치 경쟁
日재생의료 시장 VVIP된 한국인
"주사 한 번에 7000만원 쓴다"
다섯 차례 줄기세포 투여에 1억원. 치매 환자 최모씨(71) 가족이 최근 일본 원정 치료를 위해 대행업체에 건넨 돈이다. 최씨는 자신의 지방조직에서 추출·배양한 줄기세포를 투여받기로 했다. 7개월 동안 도쿄의 한 클리닉을 오가며 치료할 계획이다.
한 번에 2000만~6000만원에 달하는 재생의료 치료를 받기 위해 일본을 찾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관절 질환, 당뇨, 신경계 질환, 암 등에 이어 최근 치매까지로 치료 범위가 넓어졌다. 줄기세포와 면역세포 등을 이용한 재생의료 치료는 일부 연구에서 효과가 입증됐지만, 치매 치료는 임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그럼에도 회복이 가능하다는 입소문에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 클리닉들은 치매 치료를 목적으로 척수강이나 정맥에 줄기세포를 1회 투여하는 데 200만엔 안팎을 받는다.
국내에 아직 출시되지 않은 신약을 투여받기 위해 일본을 찾는 환자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치료제가 일라이릴리의 알츠하이머병 항체치료제 키선라다. 일본에서는 2024년 출시됐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품목허가 심사가 이뤄지고 있다. 릴리에 따르면 18개월간 19차례 투여하는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약값만 486만엔(약 4000만원)가량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국내에서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를 투약할 수 있지만 새로운 치료 방법을 찾는 환자들이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과 비교해 일본은 재생의료 치료 범위가 넓다. 2014년 ‘재생의료 등 안전성확보법’을 시행하고 미승인 세포를 활용한 자유 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일부 재생의료 서비스는 국내에서도 가능하지만 까다로운 치료계획 심의를 거쳐야 한다.
한국 VVIP 환자를 유치하려는 일본 클리닉 간 경쟁도 치열하다. 일본 클리닉은 한국어 상담은 물론 공항 픽업부터 호텔 숙박까지 연결한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회 투여 비용이 6000만원을 웃도는 ‘프리미엄 항노화’ 등 다양한 시술 상품을 내놓고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국내 재생의료업계는 연간 2만 명 이상의 한국인 환자가 일본 재생의료 시술에 2000억원 넘게 지출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원정 치료 알선 업체는 150~200곳이 성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병원들, 한국인 유치 경쟁…日재생의료 시장 5년새 두배로 韓, 치료범위 제한 등 규제 많아…"파격 규제혁신 없인 산업 도태"
“일본에서 재생의료 치료를 받는 방법을 문의하는 한국인이 늘고 있습니다.”
일본 오사카에서 재생의료 클리닉을 운영하는 의사 시마다 히데노리가 지난달 클리닉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그는 “줄기세포를 활용한 치료 문의가 특히 많다”며 “한국어 홈페이지를 열고 전화상담 서비스도 시작했다”고 했다.
일본 재생의료 클리닉이 한국의 치매 치료 및 항노화 시술 수요를 흡수하기 위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원정 치료로 효과를 봤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거액을 지출하는 한국인이 줄을 잇고 있어서다. 현지 시장 성장에 발맞춰 일본에 치료용 세포를 공급하려는 국내 바이오 기업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국 VVIP 고객 영업 강화
일본 도쿄에 있는 오모테산도 헬레네클리닉은 지난달 한국의 한 클리닉과 협약을 맺고 통역·숙박 등을 포괄하는 VVIP 컨시어지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클리닉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세포 치료 의약품 연구개발사인 헬레네바이오그룹의 도쿄 임상 거점이다.
오사카의 재생의료 전문 셀그랜드클리닉은 지난달 한국어 안내 웹페이지를 개설했다. 당뇨병·신경계 질환 치료와 항노화 목적의 시술을 소개하며 1회 투여 비용을 2만~4만달러로 제시했다. 여러 차례 시술을 묶은 종합 패키지는 5만달러(약 6700만원)에 달한다. 또 다른 오사카 클리닉인 우메키타는 한국어 홈페이지에서 한국어로 방문 전 화상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한국 환자를 모집해 일본 클리닉으로 보내주는 중개업체도 성업 중이다. 이들은 일본 클리닉과 계약한 뒤 한국 병·의원과 연계하거나 직접 온라인 광고로 환자를 모집한다. 한 중개업체 대표는 “한국 환자를 일본 클리닉에 연결해주는 대가로 받는 수수료는 치료비의 20~30% 수준”이라고 했다.
일본 시장이 커지자 차바이오텍, 네이처셀, 강스템바이오텍 등은 일본에 재생의료 치료제를 공급해 현지 클리닉에서 시술하고 있으며 이엔셀은 신규 진출을 추진 중이다. 이뮤니스바이오는 연말부터 자연살해(NK)세포를 공급하기로 했다.
◇日 시장 연평균 14% 성장
재생의료는 세포 등을 이용해 손상된 조직을 회복시키거나 질병을 치료하는 의료 분야다. 줄기세포 활용뿐만 아니라 암세포 등을 공격하는 NK세포 등 면역세포 투여도 포함한다. 일본 시장조사업체 시드플래닝에 따르면 일본 재생의료 시장 규모는 2020년 254억엔에서 지난해 486억1000만엔으로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로 커졌다. 연평균 증가율은 13.9%다. 2030년에는 시장 규모가 674억4000만엔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2월 개정 첨단재생바이오법 시행으로 일정 요건을 갖춘 재생의료 치료에서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제한 조치가 많다. 치료 대상이 중대·희소·난치성 질환으로 제한되고, 중위험·고위험 치료를 하려면 선행 임상 연구 결과가 있어야 한다. 요건을 갖춘 뒤에도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주관하는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심의위원회의 치료 계획 심의를 통과해야 비로소 시술이 가능하다.
일본처럼 치료 접근성을 높이려는 움직임도 있다. 심의위가 환자 자가 면역세포를 배양해 활용하는 재생의료의 위험도를 중위험에서 저위험으로 낮추는 방안을 지난 6월 의결한 게 대표적이다. 저위험 치료는 선행 임상 연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복지부의 후속 고시 제정을 기다리고 있다. 성은하 차병원 글로벌특허실장은 “국내에서도 규제가 완화되고 있지만 시장을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일본에 준하는 수준의 파격적인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