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사이클에 가려진 한국 증시의 취약한 구조가 또다시 드러났다. 어제 코스피지수는 7.5% 급락하며 장중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폭락 장세를 보였다. 지난 6월 장중 9385까지 치솟은 코스피는 5500선으로 밀렸다.

발단은 미국이었다.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대 후반까지 오르며 고금리 우려가 커졌다. 인공지능(AI) 인프라 기업 코어위브의 신용위험이 불거진 데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천문학적인 AI 설비투자에 비해 수익 창출이 부족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투자심리를 흔들었다.

외부 충격만 탓할 일은 아니다. 어제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3조6000억원 넘게 순매도한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9.48%, 11.06% 급락했다. 반도체 대형주에 집중된 외국인 매도가 시장 전체의 충격을 증폭시킨 것이다. 반도체의 압도적 경쟁력이 우리 경제의 강점인 동시에 금융시장의 취약점이 된 역설이다.

같은 미국발 충격에도 대만 증시는 3.4% 하락에 그치며 선방했다. 일본 증시도 4%대 후반의 낙폭을 보였다. 미국에서는 나스닥이 2% 가까이 급락한 14일 애플 주가가 오히려 상승하며 시가총액 5조달러를 돌파했다. 빅테크 쏠림이 심하다고 하지만 미국에는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 등 다양한 수익모델을 갖춘 글로벌 기업이 포진해 있다.

자본시장은 산업 경쟁력을 비추는 거울이다. 지난달 한국 수출의 절반을 반도체가 차지했고, 올해 성장률 전망치 상향에도 반도체 호황이 크게 작용했다. 동시에 다른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성장동력 부족을 가리는 착시마저 낳았다.

이번 급락을 AI 호황의 종말로 단정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주가가 반등한다고 구조적 취약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 매도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장기투자 기반은 충분하지 않고, 반도체 뒤를 이을 글로벌 선도기업도 드물다.

어제 증시 폭락은 우리 경제의 쏠림에 대한 경고음이다. 지금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냉정하게 재점검하고, 자본시장 저변 확대와 산업 생태계 다변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반도체 독주만으로는 경제도, 증시도 강해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