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7거래일째 하락하면서 증시 변동성이 극에 달하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상반기 이뤄진 리밸런싱(자산배분 재조정) 유예로 사실상 손발이 묶인 탓이다. 국내 주식 보유 비중이 이미 연말 목표치를 크게 웃돌고, 전략적 허용 범위 상한에도 근접해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증시가 흔들릴 때 구원투수 역할을 한 국민연금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1월 리밸런싱을 전격 유예했고, 5월에는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14.9%에서 20.8%로 올렸다. 전략적 허용범위도 ±3%포인트에서 ±6%포인트로 넓혔다. 코스피 상승으로 보유 비중이 한도를 넘자 이런 조치를 한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가 부양이라는 정책 기조 속에 투자 원칙이 바뀌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그 결과 증시 급등기에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지 못한 채 하락장의 직격탄을 맞았다. 코스피가 6월 고점을 찍고 7월 말 급락하는 동안 외국인은 주식을 팔아 이익을 챙겼지만, 고점에서 외국인 물량을 받아낸 개인투자자는 큰 손실을 입었다. 국민연금 국내 주식 평가액도 7월 한 달 동안에만 120조원 넘게 증발했다.

국민연금공단 측은 대규모 매도가 시장에 충격을 주고, 잦은 매매는 장기 수익률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리밸런싱은 주식을 사고파는 기술이 아니라 자산 비중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다. 일본 GPIF는 닛케이지수가 급등하는 국면에서도 비중 규칙에 따라 물량을 나눠 팔며 차익을 확정하고 과열을 식혔다. 국민연금이 원칙대로 리밸런싱을 거쳐 매수 여력을 확보했다면 급락장에서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최후의 보루다. 핵심 기준을 바꾸고도 회의록을 4년 뒤에나 공개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리밸런싱 기준을 변경한 근거와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연금을 정책 도구로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권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를 개선해 독립성, 중립성, 전문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