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초상(Portrait d_eau 260516) 162x130cm 캔버스에 천연안료 2026
물의 초상(Portrait d_eau 260516) 162x130cm 캔버스에 천연안료 2026
'흙의 작가' 채성필(54)은 서울대 동양화과에서 먹으로 그리는 수묵화를 공부했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흙으로 색을 내는 방법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더 찾아보니 흙은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도 쓰인, 인류가 가장 오래 써 온 그림 재료였다. 알면 알수록 흙에 푹 빠졌다. 그 뒤로 흙은 그의 그림 재료이자 주제가 됐다.

채성필이 오는 15일부터 서울 경운동 갤러리그림손에서 개인전 '흙, 물 그리고 시간의 묘법'을 연다. 이 갤러리에서 8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미술 공부를 이어간 그는 지금 프랑스에 살며 한국을 오간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프랑스 세르누치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대지의 몽상(Rêve de terre 260712) 150x150cm 캔버스에 흙과 수묵 2026
대지의 몽상(Rêve de terre 260712) 150x150cm 캔버스에 흙과 수묵 2026
 묘법(Inscription N2026012) 200x160cm 캔버스에 천연안료 2026
묘법(Inscription N2026012) 200x160cm 캔버스에 천연안료 2026
채성필은 붓으로 형태를 그리는 대신 흙을 물에 풀어 캔버스 위에 흘려보낸다. 흙물이 흐르다 스며들고 마르면서 남긴 자국이 그대로 그림이 된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을 그린다'는 말 대신 '작품을 그려지게 한다'는 말을 즐겨 쓴다.

이번 전시에는 대표 연작 세 가지와 새 연작 '묘법'이 걸린다. '익명의 땅'과 '대지의 몽상'은 흙으로 땅을, '물의 초상'은 흙에서 뽑아낸 파란 물감(천연안료)으로 물결을 표현했다. '묘법' 화면에는 세로줄이 빽빽하다. 흙과 물, 물감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며 남긴 자국이다. 비 온 뒤 흙벽에 빗물이 흘러내린 자국이 남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면 줄과 얼룩이 산 능선이나 강줄기처럼 보인다. 작가는 "'묘법'은 원래 '그리는 법'이라는 뜻이지만, 내게는 자연이 남긴 자국을 화면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뜻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16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