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단독 인터뷰
첫 내한하는 헬싱키 필하모닉과 협연
파가니니가 사용하던 악기로 연주
"악기의 원초적 감각에 집중해 연습"
19세기 유럽 전역을 사로잡은 전설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는 당대 최고의 연주자이자 악기 수집가였다. 스트라디바리우스·과르네리·아마티와 같은 명품 바이올린 10여대가 모두 그의 소유였다.
현재 수백억원대로 치솟은 이들 악기는 박물관에 잠들어 있거나 세계적인 연주자의 손에서 숨 쉬고 있다. 파가니니의 예술혼을 잇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31)도 그중 한 명이다.
양인모는 한국인 최초로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와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바이올리니스트다. 파가니니와 그의 이름을 합친 '인모니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파가니니가 사용했던 1743년산 과르네리 '카로두스'로 작년부터 연주하고 있다. 오는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무대에서도 이 악기로 청중을 만난다.
동심으로 돌아간 양인모
이번 무대를 앞두고 12일 한국경제신문 아르떼와 만난 양인모는 "새 악기를 쓰면서부터 소리 내는 작업 자체가 음악적 해석이 됐다"며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했을 때처럼 연주 행위 자체에서 오는 순수한 희열을 다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1시간 넘는 인터뷰 내내 진중한 목소리를 이어가던 그에게서 천진한 미소가 스쳤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양인모가 과르네리에서 발견한 매력은 "스포츠카를 타고 질주하는 느낌"에 가깝다. 그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그리스 조각상처럼 조화롭고 완벽한 균형에 아름다운 공명을 지녔다면, 과르네리는 강약의 폭이 훨씬 넓다"며 "기본적으로 소리가 커서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출 때 악기의 진가가 발휘된다"고 했다.
"이 악기를 쓴 지 1년이 됐는데 악기가 원하는 소리가 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그래서 요새 연습을 되게 많이 해요. 손가락이 줄에 닿는 느낌, 악기의 진동 같은 원초적인 감각에 집중하고 있어요. 요즘 다시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에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사진=아르떼, 문덕관헬싱키 필하모닉과 국내 첫 협연
바이올린을 대하는 마음은 이전으로 돌아갔지만, 학구파다운 그의 면모는 여전하다. 내년 1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0개곡) 연주 프로젝트를 앞둔 그는 베토벤 연구의 권위자 루이스 록우드의 영문 저서를 탐독 중이다. 내년에 처음 선보일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준비하면서도 작곡가의 전기를 살펴보며 연주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그는 이번 한국 무대에서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들려줄 예정이다. 국내 관객들 앞에선 처음 연주하는 곡이다. "새로운 곡을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협주곡 1번에 비해 앙상블이 어려운 편이지만, 헬싱키 필하모닉의 높은 수준을 믿고 이 곡을 선택했어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사진=아르떼, 문덕관
양인모와 합을 맞추는 헬싱키 필하모닉은 올해로 창단 144주년을 맞은 핀란드 명문 오케스트라다. 핀란드 대표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7개 교향곡 중 7번을 제외한 여섯 곡을 초연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악단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인모와는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결선 무대와 우승자 갈라 콘서트에서 협연한 바 있다.
이번 공연에서 헬싱키 필하모닉은 시벨리우스의 작품 두 개를 선보인다. 1부에선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중 일부를 연주한다. 2부는 교향곡 제2번으로 채운다. 2023년부터 악단을 이끌고 있는 지휘자 유카페카 사라스테는 서면 인터뷰에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중 네 곡을 하나로 엮어 작은 교향곡처럼 구성하고자 했다"며 "교향곡 2번과 대비를 이루기 때문에 시벨리우스 음악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연주의 본질적 기쁨 지킬 것"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 후 양인모는 핀란드에서 여러 차례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그가 한국 다음으로 많이 찾는 나라가 바로 핀란드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 때마다 그를 맞이하는 얼굴도 핀란드 대표 캐릭터 '무민'이다. 팬에게 받은 엽서를 간직하고자 케이스 안쪽에 가지런히 꽂아둔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악기 케이스. 양인모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핀란드의 대표 캐릭터 '무민'이 그려진 엽서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사진=아르떼, 문덕관
"핀란드에 있는 거의 모든 오케스트라와 연주해본 것 같아요. 핀란드는 악단 수준이 높은데다 시민들이 현대음악에도 열려 있는 클래식 강국이에요. 처음엔 사람들이 차갑게 느껴졌는데, 갈수록 핀란드라는 나라에 정이 든 것 같아요."
남부러울 것 없는 커리어를 걷고 있는 양인모지만, 연주자로서의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세계 클래식 음악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면서, 그 안에서 내 목소리를 찾는 게 숙제에요. 하지만 그럴수록 중요한 건 하나인 것 같아요. 연주 자체의 본질적 기쁨을 잃지 않는 거죠. 뜻이 맞는 연주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감도 지켰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