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준 현대바이오사이언스 사장. 현대바이오 제공
배병준 현대바이오사이언스 사장. 현대바이오 제공
현대바이오사이언스가 일명 ‘살인진드기병’으로 불리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치료제 개발에 나선다. 빠른 시일내 임상시험계획(IND)을 신청하고 SFTS 환자 발병이 본격화되는 내년 5월 경엔 환자 투약을 시작하는 것이 목표다.

현대바이오는 13일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제프티 SFTS 임상개발 전략 발표회’를 열고 범용 항바이러스제 후보물질 ‘제프티'’의 국내 임상 2상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승인 치료제 없어…일본도 효능 입증 한계

SFTS는 바이러스를 보유한 참진드기에 물려 발생하는 감염병이다. 국내 누적 치명률이 약 18%에 달한다. 지난해 국내에서 280명의 환자가 발생해 41명이 사망했다. 환자의 혈액이나 체액에 노출된 의료진이 2차 감염되는 사례도 발생했다.

최준용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SFTS는 주로 동아시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대형 제약사들이 치료제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질환”이라며 “현재 국내에서는 대증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2024년 항바이러스제 ‘아비간’(성분명 파비피라비르)이 SFTS 치료제로 승인됐다. 다만 임상시험에서 사전에 설정한 유효성 평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28일 이내 사망률을 12.5% 이하로 낮추는 것이 목표였으나 실제 사망률은 15.8%였다.

진근우 현대바이오사이언스 대표는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도 해당 임상 결과만으로 효과가 입증됐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며 “그럼에도 치료 대안이 없는 상황을 고려해 사용을 허용한 만큼 SFTS 치료에 대한 미충족수요가 절박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뎅기열 임상 경험 활용…SFTS 치료 효과 검증

현대바이오가 개발 중인 제프티는 기존 구충제 성분인 니클로사마이드의 체내 흡수율을 개선한 경구용 항바이러스제다. 나노 약물전달기술을 적용해 물에 잘 녹지 않고 체내 흡수가 어려운 니클로사마이드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프티는 바이러스 자체가 아닌 숙주세포를 표적으로 한다. 세포 내 엔도솜의 산성화를 억제해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침투하는 과정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회사는 세포실험에서 SFTS 바이러스 억제 활성을 확인했다.해외 연구진의 동물실험에서도 니클로사마이드의 SFTS 치료 가능성이 확인됐다. SFTS 바이러스에 감염된 생쥐에 니클로사마이드 나노제형을 경구 투여한 결과, 투여군의 생존율이 100%로 나타났다. 반면 약물을 투여하지 않은 대조군은 모두 폐사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바이오메디신 앤드 파마코테라피’에 실렸다. 진 대표는 “기존 세포실험에서 확인한 항바이러스 효능에 더해 해외 연구진의 동물실험 결과까지 확보하면서 SFTS 임상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고 강조했다.
진근우 현대바이오사이언스 대표. 현대바이오 제공
진근우 현대바이오사이언스 대표. 현대바이오 제공
기존 임상에서 확보한 인체 안전성 자료도 활용할 계획이다. 현대바이오는 코로나19 환자 약 300명을 대상으로 제프티의 임상 2·3상을 진행했다. 회사 측은 해당 임상에서 확인한 인체 약물 노출량이 외부 연구진의 SFTS 감염 동물실험에서 100% 생존을 보인 약물 노출량의 약 2.4배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환자 조기 발굴이 과제…내년 5월 투약 목표

임상 추진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으로는 환자 모집이 꼽혔다. 지난해 국내 SFTS 환자는 280명에 그쳤다. 환자가 주로 고령층에 집중돼 있고, 항바이러스제의 효과를 높이려면 증상 발생 후 가능한 한 빨리 투약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배병준 현대바이오 사장은 “SFTS 환자의 94.5%가 5~10월에 발생하기 때문에 임상 2상에 착수한다면 내년 5월 초 실제 투약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자들이 진드기에 물린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장기 손상이 진행되기 전에 환자를 조기에 등록하고 투약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현대바이오는 베트남에서 진행 중인 뎅기열 임상과 미국에서 준비 중인 호흡기 바이러스 대상 바스켓 임상도 병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제프티를 여러 바이러스 감염병에 사용할 수 있는 범용 항바이러스제로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