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과학원에서 엘렌 문스 사무총장(가운데) 등이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58회째를 맞은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미국 거시경제학자인 로버트 E. 홀 스탠퍼드대 교수와 마이클 우드퍼드 컬럼비아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AF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과학원에서 엘렌 문스 사무총장(가운데) 등이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58회째를 맞은 올해 노벨경제학상은 미국 거시경제학자인 로버트 E. 홀 스탠퍼드대 교수와 마이클 우드퍼드 컬럼비아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AFP연합뉴스
미국의 경제학자인 로버트 홀 스탠퍼드대 교수(83)와 마이클 우드퍼드 컬럼비아대 교수(71)가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거시경제 안정화 연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등장한 새 케인스주의 모형은 안정화 정책이 경기 변동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고 정량화할 수 있게 해줬다”고 수상 배경을 밝혔다.

홀 교수는 ‘소비의 랜덤워크 가설’을 정립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현대 거시경제학에서 가계의 소비 행동을 분석할 때 ‘바이블’로 여기는 모델이다. 기존 케인스학파는 소비가 ‘현재의 절대적 소득’에 크게 의존한다고 봤지만, 홀 교수는 사람들은 미래의 소득을 합리적으로 예측해 소비를 미리 결정하기 때문에 소비의 변화는 오로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정보’가 등장할 때만 일어난다는 점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또한 기업이 불황기에 임금을 삭감하기보다 채용 자체를 줄이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우드퍼드 교수는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활용하는 통화정책 이론을 체계화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3년 저서 <이자율과 물가: 통화정책 이론의 기초>, 1998년 논문 ‘화폐 없는 경제에서의 인플레이션 통제’ 등을 통해 통화량 대신 명목 금리를 조절해 경제 전체의 수요와 인플레이션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이론적으로 정립했다. 이 연구는 통화정책의 중심축이 통화량에서 금리로 이동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대'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경기변동 완화 기여
홀, 개인 소비심리 원리 밝혀…우드퍼드, 통화정책 이론 정립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홀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마이클 우드퍼드 컬럼비아대 교수의 연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기대’다. 사람들은 오늘 통장에 들어온 돈만 보고 지갑을 열지 않고, 중앙은행이 오늘 정한 금리만 보고 집을 사거나 투자하지 않는다. 앞으로 소득과 금리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 예상해 지금의 행동을 결정한다. 두 학자는 개인과 기업의 이런 선택을 분석해 소비, 고용, 물가가 움직이는 원리를 설명하고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기를 안정시키는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했다.

◇소비 ‘랜덤워크’의 대가


홀 교수는 현대 소비이론의 기초가 되는 ‘소비의 랜덤워크 가설’을 정립한 학자다. 기존 케인스학파는 사람들의 소비가 현재의 절대 소득에 의존한다고 봤다. 이후 밀턴 프리드먼은 가계가 일시적 호황기나 불황기의 소득에 휘둘리지 않고 평생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소득을 바탕으로 소비한다고 주장했다. 홀 교수는 여기에 ‘합리적 기대’를 결합했다. 합리적인 소비자라면 ‘예측 가능한 변화’를 이미 소비 계획에 반영한다고 봤다.

내년에 월급이 오를 것이 확실하다면 소비자는 내년까지 기다리는 대신 빚을 내서라도 오늘부터 씀씀이를 늘릴 것이라는 얘기다. 홀 교수는 소비 변화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변수는 예측할 수 없었던 새로운 정보와 충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실업을 보는 시각도 넓혔다. 경기 침체 때 실업자가 늘어나는 현상을 해고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새 직장을 찾기 어려워지는 과정에 주목했다. 임금이 경제 여건에 맞춰 즉각 조정되지 않으면 작은 충격에도 기업의 채용 유인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홀 교수는 2010년 미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냈고, 미국의 경기 침체 시작과 종료를 판정하는 미국경제연구소(NBER) 경기순환판정위원회를 1978년부터 2024년까지 이끌었다.

◇우드퍼드,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


우드퍼드 교수는 글로벌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과 시장 간 소통 방식을 정립한 학자다. 2003년 저서 <금리와 물가>, 1998년 논문 ‘화폐 없는 경제에서의 인플레이션 통제’ 등을 통해 현대 통화 정책의 이론을 체계화했다.

1990년대 신용카드 사용 등 금융 혁신이 일어나면서 ‘통화량’이라는 지표가 무의미해지자 우드퍼드 교수는 통화량 대신 명목금리를 통해 중앙은행이 경제 전체의 수요와 인플레이션을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또한 자연이자율(한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에 맞는 이상적인 금리)의 개념을 강조했다.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명목금리와 실물경제 기초체력에 해당하는 자연이자율의 격차에 따라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 결정된다고 봤다.

‘포워드 가이던스’에 대한 이론적 배경도 제공했다. 기준금리를 동결해도 중앙은행 총재의 입을 통해 인하를 시사하면 시장금리 하락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우드퍼드 교수는 자신의 이론이 현실에서 효과를 낸 사례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중앙은행의 포워드 가이던스 시행을 꼽았다. 그는 12일 노벨경제학상 발표 직후 기자회견에서 “2008년 말과 2009년 초 무렵에는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명목금리가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실업률은 여전히 매우 높았다”며 “이때 향후 통화 정책 경로에 대한 포워드 가이던스를 도입했고 경제 안정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포워드 가이던스에 부정적인 뜻을 나타낸 케빈 워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과의 시각차가 뚜렷한 대목이다.

우드퍼드 교수가 창시한 ‘물가의 재정이론’은 재정 확장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한국 경제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물가를 결정하는 근본적인 힘은 정부의 재정정책에 있다는 게 이론의 핵심이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신뢰를 얻으려면 반드시 정부가 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건전한 재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우드퍼드 교수는 고전경제학 이론의 엄밀성과 케인스학파가 강조하는 통화정책의 현실성을 하나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묶은 경제학자”라며 “오늘날 한국은행을 포함해 세계 대부분 중앙은행이 적용하는 경제모형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심성미/정영효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