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사진. 국립극단 제공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사진. 국립극단 제공
소포클레스의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진실을 추구하는 일이 비극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스핑크스의 난제를 해결할 정도로 현명한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역병에 빠진 테베를 구하기 위해 선왕을 죽인 범인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하지만 끝내 알게 된 진실은 그를 파멸로 이끌었다.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안 그는 스스로 두 눈을 찔렀다.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 올린 ‘안트로폴리스Ⅲ: 오이디푸스’는 이 비극적 서사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비인간 존재들을 무대 위에 올려 인간의 지식과 이성만으로 재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돌아본다. 강량원 연출은 “고대 그리스에선 현명한 인간이 재난을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 재난을 목격하는 우리는 그런 생각이 오히려 현재의 재난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독일 현대연극의 거장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소포클레스의 고전을 다시 쓴 작품을 바탕으로 한다. 국립극단은 이 작품도 변형했다. 정진새 작가는 쉼멜페니히가 희곡에 부록으로 덧붙인 ‘암흑의 집’에서 실마리를 얻어 각색에 나섰다. 부록에 나오는 개와 염소, 말, 독수리, 금강석 등을 본 작품에 등장시켜 인간의 행적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역할을 맡겼다.

공연에서 비인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구현하는 몸짓과 소리는 인간의 말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서사에 낯선 감각을 추가한다. 이를 통해 서사를 바라보는 시점은 인간 바깥으로 옮겨지고,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결말도 다른 의미를 얻는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그는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의 죽음을 목격하고 두 눈을 찌른 뒤, 인간의 도시를 떠나 비인간 존재들이 사는 광야를 향해 걸어간다.

이 마지막 모습은 파멸로만 읽히지는 않고 인간의 서사에서는 중심에 놓이지 않는 존재들이 살아가는 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겠다는 발걸음으로도 해석된다. 관객에게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이 주는 의미도 돌아보게 한다. AI는 더 많이 알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을 밀어붙이면서 끝없이 발전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는 막대한 전력과 냉각용 물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다. 기술에 따른 비용은 인간만의 몫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번 공연은 오이디푸스가 지닌 영웅의 이미지도 걷어냈다. 왕이라는 지위가 가리고 있던 장애인, 이주민으로서의 면모를 돋보이게 했다. 도시를 구해야 한다는 기대를 한데 짊어졌는데도 위엄보다는 불안이 강하게 드러났다.

작품의 의상도 그의 취약한 면모를 부각했다. 메마른 흙을 연상시키는 황색의 찢긴 옷은 인류가 마주한 황폐해진 상태를 표현했다.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입는 옷이라기보다는 인간이 겪는 고난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피부처럼 읽혔다.

공연에선 거대한 장벽이 무대 안쪽을 가로막고 있다. 배우가 사용하는 곳은 전체 무대의 4분의 1에 불과한 앞부분이다. 무대가 모두 드러나는 것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다. 앞선 안트로폴리스 시리즈 작품에서도 등장한 거대한 '빌보드'(옥외 광고판)가 화면으로 광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가로막고 있던 세계가 훤히 드러난다.

이번 공연은 오는 1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다. 쉼멜페니히의 희곡을 바탕으로 한 국립극단의 이번 안트로폴리스 시리즈는 이달 말 28일부터 ‘이오카스테’ 공연으로 이어진다. 오이디푸스의 아내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 시선으로 고대 비극을 재해석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원작과 달리 두 아들의 싸움을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