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코스가 하나의 관광명소로
러닝족 몰리면서 민원 속출도
지자체, 지역경제·규제 사이 고심
경복궁 주변을 달리면 ‘강아지’가, 여의도 외곽을 돌면 ‘고구마’가, 서울숲을 뛰면 ‘병아리’가 완성된다. 최근 들어 이같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이동 경로로 그림을 그리는 드로잉런이 새로운 여가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지역에 러너가 몰리며 주변 상권이 활기를 띠고 있지만 보행자 불편 등 민원도 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골목부터 박물관 보관함까지 ‘몸살’
< 댕댕런 > 완성 경복궁 일대를 뛰어 GPS 기록으로 강아지 모양을 그리는 코스. 독자 제공
지난 8일 찾은 경복궁 인근 ‘댕댕런’ 코스의 강아지 코 부분인 자하문로 서울통의동우체국 인근 골목은 승용차 한 대가 길 폭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비좁았다. 보행로가 따로 없어 차량과 사람이 같은 길을 쓰고 있었다. 주변 보도도 가로수와 화단, 입간판 때문에 통행 공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림을 완성하려면 특정 길목을 지나야 하는 코스 특성상 러너와 주민의 동선이 겹치기 쉬운 구조다.
인근의 한식당 종업원 A씨는 “날이 시원해지면 러닝족과 시민, 택시로 골목이 뒤엉킨다”며 “손님이 늘어서 좋으면서도 식재료를 들고 나를 때 부딪치는 사고가 날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 러닝 에티켓 > 경복궁 담장 근처에 설치된 러닝 에티켓 관련 팻말. 김영리 기자
짐 보관 수요 탓에 문화시설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11일 국립고궁박물관에 따르면 최근 박물관에는 러닝용품을 장시간 맡겨 정작 관람객이 보관함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이에 박물관은 지난달 초 물품보관소 입구에 ‘러닝용품 그만’이라는 안내문을 붙였다가 러너들이 반발하자 ‘보다 많은 박물관 관람객들이 이용할 수 있게끔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로 변경해 부착했다.
종로구의 러닝 관련 민원은 지난해 7건, 올해 1~9월 5건이었다. 지난해 서울시 중부공원여가센터에 접수된 관련 민원은 44건이었다. 러너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으면 욕설을 퍼붓는다는 민원도 나온다.
일부 자치구는 단체 달리기를 제한하거나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서초구는 반포종합운동장에서 5인 이상 단체 달리기를 제한했고, 송파구는 석촌호수 일대에서 3인 이상 러닝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달리기 참여 늘자 관광·골목상권 활력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규칙적 운동 참여자의 달리기 참여 비중은 2024년 4.8%에서 지난해 7.7%로 2.9%포인트 높아졌다. 러닝 열풍이 불면서 지역경제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서촌·북촌에는 러닝용품 대여와 짐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포츠 브랜드 매장이 들어섰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러닝 코스가 알려지면서 지역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지자체와 주민, 문화시설, 러닝업체가 걷기 구간과 단체 이용 원칙, 짐 보관 대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영리 기자
▶ 드로잉런
GPS 이동 경로로 그림을 그리는 러닝. 서울 경복궁 주변 8km를 달리는 '댕댕런'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