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가 곳곳에서 삐걱대는 모습이다. 얼마 전까지 당 대표를 지낸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미국 비자를 발급받지 못해 국정감사 대상지를 갑자기 유럽으로 바꾼 게 단적인 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인 정 의원은 국정감사를 위해 11일부터 미주지역 공관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다른 의원들과 달리 비자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민주당은 어제 미국 측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심각한 불협화음이 생긴 게 아니라면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한·미 간 균열은 국가정보원이 지난 6월 말 미국에서 열린 ‘제5차 북한 사이버 위협 대응 한·미·일 실무그룹’에 참여하지 못한 데서도 확인된다. 국정원은 “일부 오해가 있었으나 현재는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미국은 지난 3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북한의 제3 핵시설로 평북 구성시를 언급한 뒤 ‘기밀 유출’이라며 정보 공유를 중단했다. 이런 불만을 반영한 것인지 7월 말 부임한 미셸 스틸 주한 미국대사는 두 달이 넘도록 통일부 장관 면담 일정을 잡지 않고 있다. 외교부와 산업통상부, 국방부 장관은 진작 만났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전 미국대사의 행보와 비교할 때 미 대사의 ‘통일부 패싱’은 이례적이다.

최근 들어 ‘초유라고 할 만큼 한·미 관계가 안 좋다’고 말하는 미 정부 고위 인사가 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부인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김정관 산업부 장관에게 비슷한 우려를 전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정도 상황이면 미 정부의 불만이 상당한 것으로 보는 게 정상일 것이다.

국제 경제·안보 질서가 바뀌고 있다지만, 안정된 한·미 관계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하다. 증폭되는 한·미 간 불협화음에 국민 불안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동맹의 가치에 대한 한·미 양국의 달라진 인식과 태도를 슬기롭게 조율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무엇보다 정부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미 관계가 더 이상 악화하지 않도록 신뢰를 회복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