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인이세요? 여권 보여주고 여기 문진표 작성해주세요. 30분 안에 마운자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8일 일본 도쿄 시부야역 근처의 한 피부과. 낮 12시께 예약 없이 찾아가 “외국인도 당뇨병·비만 치료제 마운자로를 구매할 수 있느냐”고 묻자 직원은 익숙하다는 듯 영문 문진표를 건넸다.

문진표에는 당뇨병 여부와 복용 중인 약, 과거 병력 등을 기재하는 항목이 있었다. 별도의 당뇨병 진단서나 혈액검사 결과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상담실에 들어가자 직원은 마운자로 복용으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설명하며 “요즘 마운자로를 처방받으러 오는 외국인이 늘고 있는데 한국인이 특히 많다”고 했다. 마운자로 등은 일본 건강보험의 약가 보조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건보에 가입하지 않은 외국인도 동일한 가격에 처방받을 수 있다.

이 병원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마운자로 2.5㎎ 4주분 가격은 9460엔(약 8만원)이다. 3개월 이상 묶음 구매하면 셋째 달부터는 가격이 6930엔(약 5만8676원)으로 내려간다. 한국에서 같은 용량의 가격이 28만~35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항공권까지 포함해도 싸다

한국에선 상상 못할 가격…'日에 마운자로 싹쓸이하러 갑니다'
이처럼 일본에서 마운자로를 저렴하게 처방받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약 구매만을 목적으로 일본을 찾는 한국인이 늘고 있다. 여행 카페와 SNS에서는 일본에서 구입한 마운자로를 초밥을 뜻하는 ‘스시’와 합쳐 ‘스시자로’라고 부른다. 저렴하게 처방받을 수 있는 도쿄 등지의 의료기관은 ‘성지’로 공유된다. “왕복 항공권과 숙박비를 포함해도 일본에서 구입하는 편이 훨씬 저렴하다”는 후기도 잇따르고 있다.

일부 의료기관은 일본 내 거주지가 없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별도 구매 절차까지 마련했다. 온라인에서 외국인도 처방받을 수 있다고 안내하는 병원에서는 마운자로뿐 아니라 삭센다, 오젬픽, 위고비 등도 취급하고 있다. 간단한 온라인 진료를 거쳐 관광객이 머무는 호텔로 약을 배송하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일본에서 마운자로는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건강보험에 등재돼 정부가 정한 약가를 적용받는다. 후생노동성은 지난 8월 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해 마운자로 약가를 25% 인하했다. 여기에 일본 미용 클리닉 사이의 가격 경쟁과 엔저 효과까지 더해져 한국 약국과의 가격 차이는 더 벌어졌다.

하지만 일본 의료기관에서 처방받아 구입한 마운자로 등을 한국 당국의 승인 없이 국내로 반입하는 것은 불법이다. 한국 관세청에 따르면 마운자로와 위고비 등 비만 치료제를 불법 반입하다가 적발된 사례는 2024년 4건에서 올해 1~8월 5030건으로 급증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불법 반입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日언론 “정상체중 韓여성도 구매”

일본 언론도 한국인의 마운자로 원정 구매 현상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보다 저렴한 가격에 처방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일본 의료기관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한국에서 의학적으로 비만에 해당하지 않는 정상 체중 여성까지 미용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마운자로를 일본에서 구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했다. 연예인의 지나치게 마른 몸매를 동경하는 문화와 SNS를 통해 확산하는 극단적인 다이어트 방식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서도 무분별한 마운자로 사용에 따른 부작용 문제가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도쿄신문은 일본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 자료를 토대로 2023년 마운자로 판매가 시작된 이후 최근까지 보고된 부작용 사례가 950여 건이라고 보도했다. 일본비만학회는 지난 3일 마운자로 등 당뇨병·비만 치료제를 급격한 체중 감량이나 과도한 식사 제한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